선선한 바람을 타고 서울을 달렸다…10월을 즐기는 완벽한 방법 [나연만의 달려도 달려도]

입력 2026-10-07 15:28

10월은 풀코스 마라톤을 준비하는 러너라면 막바지 수확을 위해 박차를 가하는 시기다. 10월 말, 혹은 11월 초에 풀코스 마라톤을 목표로 준비하는 러너 중 많은 이들이 중간 점검을 위해 그 전에 한두 번의 작은 대회에 참가하곤 한다.

굳이 풀코스 마라톤을 준비하는 러너가 아니더라도, 달리기를 망설이는 두 다리가 성한 사람이라면 10km 이하의 비교적 짧은 코스를 달리는 대회에 나가보는 것을 추천한다. 달리기를 할지 말지 고민하는 이가 동기를 부여받을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마라톤대회에 등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을바람이 선선한 10월의 대회라면 날씨 걱정도 덜해서 부담 없이 도전하기에 좋다.

달리는 내내 시원한 바람을 안고 수다를 떨면서 경치를 구경하다 보면 어느덧 결승선이 눈앞에 있다. 그렇게 시작한 첫 마라톤은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물론, 경험에 홀려 푹 빠져들게 되면 그야말로 개미지옥이 따로 없지만 말이다. 그때가 되면 선선한 바람 따위는 기록에 영향을 주는 요소 중 하나일 뿐이다)


지난 5일 열린 ‘2026한경서울마라톤대회’는 풀코스 마라톤을 앞두고 기량 확인을 하고자 하는 러너나, 마라톤 입문을 위한 러너나 모두 즐길 수 있는 행사다. 한경서울마라톤은 올해가 첫 대회라고 한다. ‘처음’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는 늘 각별하다. 주최 측도 그렇겠지만 참가자들 입장에서는 ‘원년’부터 함께했다고 으스댈 수가 있기 때문이다.

2026한경서울마라톤은 5km, 10km, 하프, 이렇게 세 개의 코스를 운영했다. 세 코스 모두 여의도 문화의공원에서 출발하여 한강을 건너거나 끼고 달린다. 그렇기에 이 대회에서는 여의도의 빽빽한 빌딩숲과 탁 트인 한강 사이를 달리며 ‘세계 최고로 핫한 도시’ 서울의 매력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빽빽한 빌딩이 들어찬 공원을 나와 국회의사당을 끼고 도니 폭이 1km가 넘는 거대한 강이 펼쳐졌다. 지방에서 태어난 나로서는 이 광경을 볼 때마다 서울 특유의 경이로움에 압도된다. 이쯤되면 주최측이 마라톤이 아닌 ‘속성 서울 구경’ 행사를 연 게 아닌가 하는 망상마저 든다.

내 경험상 서울에서 열리는 마라톤 대회, 그것도 처음 열리는 대회라면 달리기 전후로 짐을 맡기고 찾느라 대혼란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번 대회는 소지품을 찾는 일이 혼잡함 없이 빠르고 매끄럽게 진행되어 달린 후의 피로를 크게 덜어주었다.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 곳은 또 있었는데, 바로 교통 통제다. 마라톤은 필연적으로 도로를 점거해야 하지만 이 대회는 코스 중 최대한 도보를 활용하여 시민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서강대교도 전면 통제가 아닌 절반만 통제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러너의 안전은 확보하면서 시민들의 불편은 줄이는 영리한 운영이다. 거기에 빌딩숲하고 한강도 보여줘야 한다. 코스를 기획한 사람 머리털이 한 움큼은 빠지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다. 기록을 내려놓으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나는 10km 코스를 조깅하듯 달렸다. 하프 코스를 신청했다면 큰일 날 뻔했다. 11월에 풀코스 마라톤을 달릴 예정이지만 무릎이 온전치 않아 완주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리하게 욕심을 부린 결과일 터다.

마음을 내려놓으니 주변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잘 들어왔다. 앞에서 뛰는 주자들의 대화가 바람을 타고 귀로 쏙쏙 들어온다. 내 앞의 주자가 어제 맥주를 일 리터나 마시고 잔 탓에 시작부터 배가 불편하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서강대교를 건너기 전부터 걷기 시작하는 주자들이 있는가 하면, 이미 서강대교 왕복을 끝내고 내 옆을 스쳐지나가는 주자가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한강은 늘 그렇듯 도도하게 흐를 뿐이다.


뛸 사람은 뛰고 걸을 사람은 걸었다. 선선한 날씨 덕인지 달리고 난 후에도 쾌적함이 남아있었다. 마라톤 입문자부터 마라톤 ‘고인물’까지 두루 즐길 수 있는 가을 소풍 같은 대회 아니었을까. 한경서울마라톤이 내년에도 열린다면 어떻게 진행될지 벌써 궁금해진다.

몇 분의 기록을 앞당기는 것도 성취감이 크겠지만 달리는 행위 자체를 온전히 즐기는 것도 큰 기쁨이다.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고 달릴 수 있는 건강에 감사하며 기뻐하는 것. 그것도 평범한 우리가 마라톤을 즐기는 방식 중 하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