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탁사 책준소송 '반전'에 제동…"무궁화신탁 261억 배상"

입력 2026-10-06 15:33
이 기사는 10월 06일 15:33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책임준공확약형 개발사업을 둘러싼 손해배상 소송에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주단이 다시 승소했다. 최근 책임준공기한 연장이나 손해액 산정 등을 이유로 신탁사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이 잇따랐지만, 법원은 이번 사건에서 계약서에 대출원리금을 손해배상 예정액으로 명시한 점을 근거로 전액 배상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책임준공 사업장의 공사가 상당 부분 마무리된 가운데 과거 사업장에서 불거진 소송과 투입자금 회수 문제가 신탁업계의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출원리금은 예정손해” 전액 배상 판단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 제42민사부는 지난 2일 파주중앙새마을금고 등 10개 새마을금고가 무궁화신탁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전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무궁화신탁이 대주단에 대출원금 240억원과 이자를 합한 261억805만원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지난해 5월 31일부터 소장 송달일까지 연 6%, 이후 돈을 갚는 날까지 연 12%의 지연손해금도 지급하라고 했다.

이 사건은 경기 화성시 봉담읍 오피스텔·근린생활시설 개발사업을 둘러싼 소송이다. 대주단은 2021년 240억원 규모의 대출약정을 맺었고 무궁화신탁은 관리형토지신탁 수탁자로 참여했다. 책임준공확약형 신탁은 시공사가 약속한 기한까지 공사를 끝내지 못하면 신탁사가 일정 기간 안에 준공을 책임지는 구조로, 이 사건에서도 무궁화신탁이 시공사를 대신해 준공 의무를 부담했다.

시공사는 당초 책임준공기한인 2023년 1월까지 건물을 완공하지 못했다. 대주단은 이후 대출 만기와 신탁사의 책임준공기한을 연장했지만 무궁화신탁도 연장된 기한인 2023년 11월까지 준공하지 못했다. 건물은 약 5개월 뒤인 2024년 4월 사용승인을 받았고, 차주는 이듬해 1월 대출 만기에도 원리금을 상환하지 못했다.

법정에서는 신탁사가 책임준공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 때 대출원리금을 어느 정도까지 물어줘야 하는지가 쟁점이 됐다. 무궁화신탁은 해당 약정을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볼 수 없다고 맞섰지만 재판부는 대출원리금과 연체이자를 미리 정해둔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봤다. 실제 손해액을 별도로 따지는 대신 계약 당시 정해둔 금액을 지급하기로 약속했다는 의미다.

재판부는 대출약정과 신탁계약, 책임준공이행확약에서 배상 책임을 반복해 정했고 신탁계약에 대출원리금과 연체이자를 ‘손해배상액의 예정액’이라고 명시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무궁화신탁이 일반 관리형토지신탁보다 10배 이상 높은 수준의 신탁수수료를 받은 것으로 보이는 점도 고려했다. 책임준공확약이 없었다면 대주단 내부 여신기준상 대출 자체가 어려웠을 것이라는 판단도 내놨다.

무궁화신탁이 제기한 자본시장법 위반과 배상액 감액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대출원리금 지급이 다른 사람의 빚을 대신 보증하는 게 아니라 신탁사가 스스로 약속한 책임준공 의무를 지키지 못한 데 따른 손해배상이라고 봤다. 대주단이 대출 만기와 책임준공기한을 연장해 사업이 계속 진행될 수 있도록 협조한 점, 무궁화신탁이 시공사 등에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 등도 감액하지 않은 이유로 들었다.엇갈리는 책준 판결…계약 문구가 승패 갈라이번 판결은 최근 신탁사 승소 사례가 잇따른 뒤 나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책임준공기한을 자동으로 늘려주는 특약이나 대주단의 귀책사유, 실제 손해 발생 여부 등을 근거로 신탁사의 손을 들어주는 하급심 판결이 이어지면서 업계에서는 소송 흐름이 달라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지난달 KB부동산신탁 관련 소송에서도 법원은 대출원리금 지급 약정을 미리 정한 배상액이 아니라 실제 발생한 손해를 배상하기 위한 약정으로 판단해 신탁사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계약서 문구가 달랐다. 대출원리금과 연체이자를 ‘손해배상액의 예정액’이라고 명확하게 적어둔 점이 판결을 가른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책임준공 소송이 어느 한쪽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흘러가기보다 계약 내용과 공사 지연 경위 등 사업장별 사정에 따라 결과가 갈리는 모습이다.

대주단을 대리한 법무법인 로엘의 정태근 대표변호사는 “최근 신탁사가 승소한 사례가 있었으나 법원의 주된 기조는 바뀌지 않았다”고 말했다.준공 부담 줄었지만…소송·자금 회수는 숙제책임준공을 둘러싼 업계의 부담도 달라지고 있다. 한국신용평가가 분석한 6개 신탁사의 미준공 책임준공형 사업장은 2023년 말 112곳에서 2024년 말 50곳, 지난해 말 22곳으로 줄었다. 남은 사업장의 평균 공정률도 약 74%에 달해 앞으로 공사를 마무리하기 위해 새로 투입해야 할 자금 부담은 크게 작아졌다.

문제는 이미 들어간 돈이다. 지난해 말 이들 신탁사의 책임준공형 사업장 신탁계정대는 9116억원으로 이 가운데 5859억원에 대손충당금이 설정돼 있다. 사업장 분양이나 정상화가 지연될 경우 신탁사가 투입한 자금을 회수하는 데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는 의미다.

새로운 수익원을 찾는 것도 과제다. 책임준공형 개발신탁 신규 수주는 2021년 정점을 찍은 뒤 개발신탁 시장 위축 등의 영향으로 급감해 최근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신탁사들은 도시정비사업과 리츠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지만 실제 수익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부동산신탁사 관계자는 “준공 부담이 줄어든 만큼 이제는 소송과 투입자금 회수가 더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