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가 단순히 빙하가 녹거나 기온이 오르는 환경적 문제를 넘어 전 세계 여아의 교육과 건강, 안전 등 생존의 위기로 작용하고 있다는 실태 조사가 나왔다.
국제구호개발 NGO 플랜 인터내셔널이 오는 11일 세계 여아의 날을 맞아 기후변화가 세계 여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글로벌 연구결과를 공개했다. 플랜 인터내셔널은 지난 30년간 50여 개국에서 축적된 보건·기후 데이터를 분석하고 방글라데시, 케냐, 페루, 세네갈, 짐바브웨 등 5개국 여아 5000명의 설문조사와 139명을 대상으로 한 집단 심층면담(FGD) 및 인터뷰 결과를 종합했다고 6일 밝혔다.
연구에 따르면 기후 재난으로 인한 가계 경제 악화는 가장 먼저 여아들의 학업 중단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는 단순한 교육 기관을 넘어 성폭력과 조혼으로부터 여아들을 보호하는 주요 안전망 역할을 해왔으나, 교육을 중단한 여아는 학교에 계속 다니는 또래에 비해 조혼이나 원치 않는 임신을 경험할 가능성이 2배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방글라데시의 열아홉 살 소녀 샤히나는 “대홍수로 모든 것을 잃은 상황에서 가족들은 경제적 어려움만 생각하고 어린 딸들을 시집보낸다”고 전했다. 페루와 짐바브웨에서는 12~13세의 여아들이 기후 재해 이후 임신을 하고 학업을 포기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 기후 재해를 겪은 여아 10명 중 1명(10%)은 18세 이전 조혼 또는 원치 않는 임신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10명 중 3명 이상은 지역사회 내에서 여아들의 조혼(36%)과 예상치 못한 임신(33%), 젠더 기반 폭력(28%)이 증가한 것을 목격했다고 답했다.
태풍·홍수 등 단발성 재해보다 장기적인 '가뭄'이 소녀들에게 더 치명적인 위협이 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농작물과 소득원이 장기간 말라붙으면서, 가계가 선택하는 마지막 생존 수단으로 딸의 조혼이 강요되는 구조적 문제가 드러났다. 재해 후 운영되는 임시 대피소 역시 과밀화 및 조명 부족 등으로 인해 성희롱·성폭력 및 생필품 대가성 성착취에 노출되는 부작용이 지적됐다.
기후 요인 가운데서는 장기간 이어지는 가뭄이 여아의 삶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인으로 지목됐다. 가뭄으로 농작물과 가축, 가계 소득이 감소하면서 가정의 경제적 부담이 커지고, 가계가 선택하는 마지막 생존 수단으로 딸의 조혼이 강요되는 구조적 문제가 드러났다.
재난 이후 설치되는 임시 대피시설에서도 여아와 여성의 안전 문제가 제기됐다. 비좁은 공간과 어두운 등으로 성희롱과 성폭력에 노출될 위험이 커질 수 있으며, 생필품과 식량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성적 착취에 노출될 가능성도 확인됐다.
기후 대응 정책에서 여아와 여성의 보건 및 안전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플랜 인터내셔널에 따르면 전 세계 국가 기후계획 가운데 여아 또는 여성의 보건을 명시한 비율은 약 절반 수준이며, 다자간 기후기금 가운데 보건 분야에 배정되는 비중은 0.5%에 그쳤다.
플랜 인터내셔널은 제3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1)를 앞두고 각국 정부와 국제사회에 ▲기후 재난에서도 여아들의 학교 교육이 중단되지 않도록 무료 교육 및 학교 개방 유지 ▲기후 적응 기금 내 청소년 여아의 성·생식 보건 예산 의무 할당 ▲비상 구호 물품 포장에 생리용품과 피임약, 보호 서비스 기본 포함 ▲소수자 및 장애 여아 등 가장 취약한 계층에 우선 지원 도달 등을 제언했다.
리나 겔라니 플랜 인터내셔널 CEO는 “소녀들에게 기후위기는 먼 미래의 두려움이 아니라, 매일의 삶과 교육, 안전을 위협하는 현실”이라며 “무엇이 여아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무엇이 그들을 보호하는지 알고 있다. 부족한 것은 증거가 아니라 행동할 긴급성”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기후 대응 정책과 재정 배정에서 여아들의 권리가 우선순위로 다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혜 한경닷컴 기자 shkim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