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방송국 부지에 데이터센터…'귀한 몸' 된 도심 자투리 땅

입력 2026-10-05 17:35
수정 2026-10-06 10:30
▶마켓인사이트 10월 5일 오후 2시 21분

30년 넘게 방송사 시설로 쓰인 서울 강서구 등촌동 SBS 공개홀을 데이터센터로 개발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노후 시설을 허물고 여의도와 마곡 등 인근 업무권역의 인공지능(AI)·클라우드 수요를 겨냥한 디지털 인프라로 탈바꿈시키려는 구상이다. 전력 인허가 부담이 상대적으로 작은 10㎿(메가와트) 미만 데이터센터가 주목받자 활용도가 떨어진 자투리 도심 부동산의 가치가 다시 매겨지고 있다. ◇10㎿ 아래 도심형 시설 봇물5일 상업용 부동산 컨설팅 기업 CBRE코리아에 따르면 서울 주요 데이터센터 개발 사업지는 14곳이다. 이 가운데 전력 규모가 공개된 9곳은 예외 없이 10㎿ 이하다. 수십㎿급 대형 데이터센터가 전력을 찾아 수도권 외곽으로 이동하는 사이 서울에서는 10㎿ 안팎 시설이 틈새시장을 파고든 셈이다.


새 부지를 확보하기 어려운 도심에서는 기존 부동산을 데이터센터로 바꾸는 개발 프로젝트가 대세다. 영등포구 문래동에서는 1960년대 지어진 도금·금속가공 공장을 허물고 데이터센터를 짓는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당산동 TCC동양타워처럼 기존 오피스를 활용해 데이터센터를 증축·리모델링하는 사업도 있다. 비싼 도심 땅을 새로 사기보다 기존 자산의 부지와 전력을 다시 활용해 가치를 높이는 방식이다.

10㎿ 이하 사업이 많은 건 전력 인허가 기준 때문이다. 10㎿ 이상 대규모 전력 사용시설은 전력 계통 영향평가를 거쳐야 하지만 그 아래 규모는 평가 대상에서 제외된다. 수도권에서 대규모 신규 전력을 확보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이 차이는 사업 기간과 인허가 불확실성을 가르는 요인이 된다. 활용도가 떨어진 공장과 노후 오피스 보유자가 소형 데이터센터 전환에 뛰어드는 배경이다.

도심 데이터센터는 수요가 탄탄하다. 금융회사, 대기업, 공공기관 등 보안 기능과 빠른 처리 속도를 요구하는 수요처가 서울에 밀집해 있어서다. 특히 AI 서비스 확산으로 이용자 가까이에서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처리하는 추론형 연산 수요가 늘고 있다.

전체 AI 데이터센터 수요에서 추론형 연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5년 26%에서 2030년 42%로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 도심형 데이터센터가 대형 시설과 별도 시장을 형성하는 배경이다. ◇개발 용지 가격도 상승데이터센터 개발 수요가 늘자 부동산 가격이 꿈틀거리고 있다. 서울 데이터센터 개발용 토지의 ㎿당 최고 거래가격은 최근 3년 새 40% 넘게 상승했다. 국내 기관투자가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완공된 자산을 사들이는 데서 나아가 전력과 임차인 확보가 가시화된 개발 사업에 자금을 넣고 있다.

개발한 자산을 매각할 수 있는 시장도 형성됐다. 이지스자산운용이 개발한 경기 하남 데이터센터는 2024년 맥쿼리인프라에 약 7340억원에 매각돼 국내 데이터센터의 대표적인 회수 사례가 됐다. 해외 인프라 운용사와 사모펀드도 한국 데이터센터에 투자할 수백억~수천억원 규모 자금을 마련하고 투자 기회를 찾고 있다.

개발 자산을 장기 투자자에게 넘기는 회수 시장이 열려 기관투자가가 개발 단계부터 자금을 투입할 유인이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도심 데이터센터 사업에는 복병도 있다. 데이터센터 인근 지역 주민이 개발 사업에 집단으로 반대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민심을 잡지 못하면 지방자치단체에서 인허가를 받기 어렵다. 이 때문에 개발사들은 사업 초기부터 주민설명회를 열고 전문기관의 검증 결과를 공개하거나 운영 중인 시설 견학 기회를 마련하는 등 지역사회와 소통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