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소판이 부족하니 지정헌혈자를 구해놓으세요.”
급성림프모구백혈병(ALL)을 진단받은 어머니를 둔 20대 김모씨가 최근 의료진에게 들은 말이다. 김씨는 곧바로 ‘지정헌혈 앱’에 접속해 혈소판 다섯 팩이 필요하다는 사연을 올렸다. 하지만 아직까지 헌혈자를 구하지 못해 혹시라도 어머니에게 급박한 상황이 닥칠까 봐 하루하루 애태우고 있다.
지정헌혈 앱은 환자와 헌혈자를 연결하는 플랫폼이다. 2020년 출시된 뒤 6년 만에 다운로드 5만 건을 넘어섰다. 앱을 열면 수혈이 필요한 환자 이름, 연락처와 함께 가족이 적어놓은 절박한 사연이 쏟아진다. 아버지가 혈액암으로 입원 중인 송모씨, 어머니가 폐암 4기를 앓고 있는 김모씨 등 가족에게 필요한 혈액을 구하려는 이의 애끓는 사연이 넘친다.
지정헌혈은 일반헌혈과 달리 헌혈자가 특정 수혈자를 정해 피를 내주는 헌혈이다. 헌혈자들에게 선택받기 위해 환자와 가족은 위급함, 절박함을 더 적극적으로 드러낼 수밖에 없다. 혈액을 구하는 일마저 환자 가족 개인의 호소와 ‘사연 경쟁’에 기대야 하는 것이다.
환자와 보호자가 헌혈자를 찾아 나서는 배경에는 갈수록 취약해지는 헌혈 기반이 자리한다. 올해 9월까지 중복 헌혈자를 제외한 헌혈자 실인원은 98만7757명이다.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지면 코로나19가 확산한 2020년 128만1773명, 2021년 127만2178명에도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올해 들어 9월까지 혈액 적정 보유량을 유지한 날은 84일로 전체의 31%에 그쳤다. 혈액 부족이 일시적 현상을 넘어 일상화하고 있다는 얘기다.
대형 병원도 혈액 공급난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 병원은 자체 혈액은행에 통상 3~5일분 혈액을 비축하지만 최근에는 필요한 물량을 제때 공급받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대형 의료기관마저 혈액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다면 격오지와 중소 병원 사정은 더 열악할 수밖에 없는 게 불 보듯 뻔하다.
누구에게, 어느 병원에서, 언제 수혈이 필요하든 혈액을 제때 공급하는 것은 국가 혈액 관리 체계가 맡아야 할 기본적인 역할이다.
정부는 단순히 헌혈 참여를 독려하는 데 그치지 말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헌혈 저변을 넓히는 동시에 확보한 혈액이 지역과 병원별 수요에 맞춰 신속하게 배분·이동할 수 있도록 유통망을 함께 손봐야 한다. 환자와 가족이 스마트폰을 붙잡고 낯선 사람에게 자신의 불행을 설명해야만 피를 구할 수 있는 현실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