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빌려주고 월급에서 까달라던 직원…퇴직 날 '뒤통수' [사장님 고충백서]

입력 2026-10-03 07:00
수정 2026-10-03 07:28

직원의 개인 과태료와 형사 벌금, 교통사고 수리비를 대신 내주고 이를 임금·퇴직금에서 공제한 사업주에게 근로기준법 위반죄를 물을 수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근로자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대납금 공제에 합의했다면 근로기준법상 '임금 전액 지급 원칙' 규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취지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수원지방법원 제5-2형사부는 근로기준법 및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업주 A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유지하고 검사의 항소를 기각했다.◆과태료·수리비·벌금 720만원 대납해줬더니… "퇴직금 깎았다" 고소화물차 기사 E씨는 2022년 9월 근로계약을 체결하며 '업무 외 개인 부주의 사고는 근로자가 전액 책임진다'는 약정을 맺었다. 하지만 E씨는 같은 달 운행제한 위반으로 과태료 70만 원 처분을 받자 2023년 2월 사업주 A씨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대납을 요청했다. A씨는 과태료를 먼저 내준 뒤 7개월간 월 10만 원씩 E씨의 급여에서 나눠 깎았다.

이어 E씨는 2023년 5월 자신의 100% 과실로 주차된 아우디 차량을 받아 1500만 원의 수리비를 발생시켰다. 같은 시기 별개의 특수협박죄로 선고받은 벌금 500만원의 납부 통지서까지 나오자 E씨는 다시 A씨에게 도움을 청했다. A씨는 벌금 500만 원을 대납해주는 대신 월 30만 원씩 임금에서 공제하고 퇴직 시 잔액을 일시 공제하기로 하는 '공제동의서'를 작성했다. 아우디 사고 수리비 중 E씨 부담금 150만 원도 퇴직금에서 공제하기로 동의서를 썼다.

이후 E씨가 퇴직하자 A씨는 미상환 벌금 260만 원과 사고 부담금 150만 원 등 총 410만 원을 퇴직금에서 공제한 뒤 잔액을 지급했다. 그러자 E씨는 "임금과 퇴직금을 깎은 것은 불법"이라며 A씨를 노동청에 고소했고, 검찰은 임금 전액 지급 원칙 위반 등으로 A씨를 재판에 넘겼다.

근로기준법 제42조 제1항은 "임금은 통화로 직접 근로자에게 그 전액을 지급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사용자가 근로자에 대해 가지는 채권을 가지고 일방적으로 근로자의 임금채권을 상계하는 것은 금지하기 위해 마련된 규정이다. ◆ 法 "자유로운 의사 따른 상계합의" 재판의 핵심 쟁점은 근로자의 동의를 얻어 임금·퇴직금과 대납금을 상계한 것이 유효한지 여부였다. 검찰은 "임금은 전액 지급이 원칙이며, 퇴직 전 작성한 공제동의서는 퇴직금 채권의 사전포기로서 강행규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사용자가 근로자의 자유로운 의사에 터잡은 동의를 얻어 임금채권과 상계하는 것은 근로기준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대납하고 이를 임금서 분할 공제하기로 한 것은 어디까지나 회사와 E 사이의 명시적 합의 또는 묵시적 합의에 따라 이뤄진 것"이라며 "공제 합의가 이뤄질 당시 E가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실질적으로 방해받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E씨가 당초 경제적 상황이 안 돼 대납을 부탁했고, 재직 중엔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다가 퇴직 후 문제 삼은 점도 지적했다. E씨 스스로도 노동청 조사에서 "잔소리 때문에 어쩔 수 없었지만(공제합의를 했지만) 강요나 협박에 이르지는 않았다"고 진술한 점이 결정적이었다.

법원은 또 "사후적으로 사용자의 민사상 지급책임이 인정된다고 곧바로 사용자의 법 위반의 고의가 인정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며 "공제가 이뤄진 임금 및 퇴직금 지급의무의 존부에 관해 다툴 만한 근거가 있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범죄의 고의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정상태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돈을 빌려주거나 근로자의 손해배상금을 대납해주는 경우가 종종 있다"라며 "이를 공제할 때 형사처벌 위험을 피하려면 근로자가 자발적·자유로운 의사로 동의했다는 사실을 명확히 입증할 수 있는 공제동의서와 대납 요청 내역(문자, 계좌이체 내역 등)을 구체적으로 남겨두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