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버추얼 태권도

입력 2026-10-02 17:40
수정 2026-10-03 00:33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시범 종목으로 등장한 e스포츠는 2023년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정식 메달 종목이 됐다. 당시 ‘리그 오브 레전드’ 등 7개 세부 종목에 메달이 걸렸다. 키보드와 마우스, 컨트롤러 등을 다루는 솜씨도 국가대표끼리 겨루는 기량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는 퍼즐 게임 ‘뿌요뿌요’도 등장했다. 같은 색의 젤리 모양 캐릭터 뿌요를 4개 이상 연결해 없애는 게임이다. 연쇄적으로 없애면 상대 화면에 ‘방해 뿌요’를 떨어뜨릴 수 있다. 몇 수 앞을 내다보는 빠른 판단과 손놀림이 승부를 가른다. 화면 속 퍼즐 대결에도 금메달이 걸리는 시대다.

더 눈길을 끈 종목은 ‘버추얼 태권도’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첫 메달 종목으로 채택됐다. 성별과 체급을 나누지 않고 남녀 8명씩, 16명이 출전한다. 선수는 가상현실(VR) 헤드셋을 쓰고 몸에 동작 추적 센서를 장착한다. 눈앞에 보이는 상대를 향해 발차기를 하면 가상공간 아바타가 움직인다. 관중은 경기장 스크린으로 두 아바타 간 대결을 지켜볼 수 있다. 실제 선수끼리 몸을 부딪치는 일은 없다.

승패를 가르는 방식은 컴퓨터 격투 게임을 닮았다. 라운드당 최대 60초, 3전 2선승제다. 발차기로 상대의 체력 게이지(수치)를 먼저 소진시키거나, 제한 시간이 끝났을 때 게이지가 더 많이 남아 있으면 해당 라운드를 따낸다. 유효타를 쌓아 ‘스턴(기절) 게이지’를 채우면 상대 아바타를 3초간 무방비 상태로 만들 수도 있다. 실제 태권도 기술에 게임의 규칙을 입힌 것으로, 피지컬 스포츠와 e스포츠의 결합인 셈이다. 우리나라 선수도 초대 메달리스트에 도전했지만 첫 경기에서 베트남 선수에게 패해 8강 진출이 좌절됐다.

기술의 발전은 스포츠를 즐기는 방식뿐만 아니라 경기 규칙마저 바꾸고 있다. 버추얼 태권도는 성별과 체급이 다르더라도 가상공간에서 같은 조건으로 싸울 수 있게 한 경기다. 인공지능(AI)과 로봇 기술 등이 더 발전하면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에서 휴머노이드끼리 맞붙는 광경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안정락 논설위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