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인을 지키려던 제도가 어떻게 침해자의 방패가 됐나 [서이헌의 법과 기업]

입력 2026-10-04 07:00
수정 2026-10-04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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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장에서 우리는 고인에게 삼베 수의를 입힌다. 좋은 수의가 마지막 도리라는 마음에 유족들은 값비싼 국산 삼베를 찾고, 그 마음을 노려 중국산 수의를 국산으로 속여 열 배 넘는 값에 판 상조회사가 적발되기도 했다.

그런데 삼베옷은 본래 고인이 아니라 남은 자식의 옷이었다. 부모를 여읜 불효자로서 거친 옷을 걸치고 고행한다는 뜻의 상복이었고, 고인에게는 생전에 입던 가장 좋은 옷이나 비단옷을 입혀 보냈다. 이 예법은 1934년 조선총독부가 ‘의례준칙’으로 수의에 비단 대신 삼베와 광목을 쓰게 하면서 뒤집혔다. 그렇게 우리는 죄인에게 입히던 옷을 고인에게 입히며, 그것을 전통이라 여기게 됐다.

상속회복청구권, 관습에서 출발
민법 제999조의 상속회복청구권도 본래 전통이 아니었던 것이 ‘관습’이라는 이름을 달고 뿌리내린 사례다. 상속회복청구권은 상속인이 아니면서 상속인 행세를 하며 재산을 차지한 사람에게 진정한 상속인이 반환을 청구하는 권리다. 이름 그대로, 빼앗긴 것을 되찾으라고 상속인에게 쥐여 준 권리다.

상속은 예고 없이 시작되고, 남겨진 상속인이 고인의 재산이 어디에 무엇으로 있는지 속속들이 알기는 어렵다. 그래서 이 제도의 뿌리인 로마법은 상속인이 재산 하나하나에 대해 권리를 증명할 필요 없이, 상속인이라는 지위만 증명하면 재산 전체를 한꺼번에 돌려받을 수 있게 했다.

독일 민법은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상속재산을 차지한 사람에게 그 재산의 내용과 소재를 상속인에게 알려 줄 의무까지 지웠다. 독일 민법에서 상속회복청구권은 30년 동안 행사할 수 있고, 그 기간이 지나더라도 상속인의 소유권 자체가 침해자에게 넘어가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1898년 일본 민법은 이 제도를 들여오면서 ‘안 날부터 5년, 상속 개시부터 20년’이라는 짧은 기간을 붙였다. 호주 상속, 곧 집안의 대를 누가 잇는지는 빨리 확정해야 한다는 이유였는데, 그 기간이 재산 상속에도 별다른 논의 없이 준용됐다. 상속인을 위해 만들어진 권리가, 기간이 지났다는 항변을 통해 진정한 상속인을 물리치는 침해자의 방패로 바뀐 것이다.

식민지 조선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일제강점기의 최고법원인 조선고등법원은 1920년만 해도, 상속재산을 되찾는 청구에 기한을 두는 관습이 조선에 없으므로 기한 없이 청구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1935년, 같은 법원은 상당한 기간이 지나면 상속재산을 되찾을 권리가 소멸하는 것이 조선의 관습이라며 결론을 바꿨다. 남편이 생전에 들인 양자의 입양이 무효라며 아내와 아들이 낸 소송이었는데, 입양이 무효인지 따져 볼 것도 없이 상속이 시작된 지 21년이 지났다는 이유로 청구는 배척됐다.

존재하지 않던 관습이 판결을 통해 발견돼 상속인의 권리를 제한하는 규범이 되자, 당시의 일본인 법률가조차 이를 두고 관습의 이름을 빌린 판례 입법이라고 비판했다. 정작 조선의 법전인 경국대전은 공동상속인 중 일부가 상속재산을 독차지한 경우 기한 없이 소송으로 되찾을 수 있게 하고 있었다.

일본에서는 1978년을 기점으로 상속회복청구권의 단기 시효가 낳는 부작용이 크게 줄었다. 그해 최고재판소가, 자기에게 상속권이 있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인 사유가 없는 침해자는 시효 완성을 원용할 수 없다고 판결했기 때문이다. 공동상속인이라면 공동상속인의 범위를 알고 있는 것이 보통이므로, 공동상속인 사이의 분쟁이 상속회복청구제도의 대상이 되는 것은 특수한 경우에 한정된다고도 했다.
제정민법, 상속회복청구 기간 더 줄여


한국에서는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관습’이 계속 이어졌다. 1958년 제정 민법은 ‘안 날부터 3년, 상속 개시부터 10년’으로 상속회복청구권 행사기간을 더 줄였는데, 이 조항은 국회 민법 심의 마지막 날 깊은 논의 없이 통과됐다. 판례는 이 기간을 공동상속인 사이의 다툼에도 적용했다.

나아가 상속 개시부터 10년이 지난 뒤에 침해가 일어난 경우에는 아무 권리 없는 침해자가 침해하는 즉시 소유권을 얻고, 진정한 상속인은 그 즉시 권리를 잃는다는 해석에까지 이르렀다. 일본에서는 상속회복청구제도가 적용되는 일 자체가 예외가 된 반면, 한국에서는 상속권을 제한하는 강력한 장치가 됐다.

교정은 뒤늦게 이뤄졌다. 2001년 헌법재판소는 ‘상속 개시부터 10년’ 부분에 대해 그 “불합리성과 반윤리성”을 지적하며 위헌을 선고했고, 이듬해 국회는 기산점을 ‘침해행위가 있은 날’로 고쳤다. 한편 민법이 시행된 뒤에도 그 전에 개시된 상속에는 일제강점기의 옛 ‘관습’이 그대로 적용되고 있었는데, 200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상속이 개시된 날부터 20년이 지나면 상속회복청구권이 소멸한다’는 옛 관습에 대해 관습법으로서의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1935년에 만들어진 ‘관습’을 걷어내는 데 68년이 걸린 것이다. 그러나 물려받은 재산이라는 이유 만으로 권리의 행사기간에 제한이 붙는다는 점은 그대로다. 3년과 10년이라는 짧은 기간 안에 상속회복청구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진정한 상속인은 빼앗긴 상속재산을 되찾을 권리를 잃는다.

역사학자 홉스봄은 유서 깊어 보이는 전통들이 실은 근래에 특정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음을 밝혀내고, 이를 ‘만들어진 전통’이라 불렀다. 상속회복청구권의 역사는 한 가지를 더 보여준다. 권리자를 보호하려는 좋은 뜻으로 만들어진 제도도, 다른 환경에 옮겨 심으면 전혀 다른 기능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통’이나 ‘확립된 판례’라는 이름이 붙는 순간, 우리는 무의식중에 그 정당성을 따져 보지 않게 된다. 그러나 전통이란 때로 가장 오래된 것이 아니라, 가장 오래 의심받지 않은 것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