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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도 어느 정도 준비했고 집도 있습니다. 그런데 은퇴하고 나면 뭘 하면서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하나더넥스트 라운지에서 은퇴 상담을 하다 보면 종종 듣게 되는 이야기다. 자산도 있고 연금도 준비돼 있어 경제적으로 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정작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막막함을 느끼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우리는 그동안 은퇴설계를 노후에 필요한 현금흐름을 준비하는 데 중심을 뒀다. 국민연금은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은 얼마나 준비돼 있는지, 보유한 금융자산과 부동산은 어느 정도인지 살펴보고 필요한 노후생활비와 부족한 자금을 계산했다.
물론 안정적인 노후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그러나 은퇴 이후의 삶이 길어지고 그 모습도 다양해진 지금, 현금흐름을 준비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은퇴설계가 될 수 있을까.
이제는 한 가지 질문을 더 던져볼 필요가 있다. “은퇴 후에는 어떻게 살고 싶으신가요?” 어쩌면 100세 시대의 은퇴설계는 이 질문에서 시작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은퇴는 더 이상 ‘마무리’가 아니다부모 세대에게 은퇴는 인생의 후반부를 정리하는 시기에 가까웠다. 직장에서 물러난 뒤 그동안 모은 자산과 연금으로 생활하고, 자녀와 가족을 중심으로 노후를 보내는 것이 우리가 익숙하게 봐온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은퇴는 다르다. 50대 후반이나 60대에 직장을 떠난 뒤에도 20~30년 이상의 시간이 남을 수 있다. 이제 은퇴 이후는 여생을 보내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의 독립된 생애 단계가 된 것이다.
단순히 수명만 늘어난 것도 아니다. 가족의 형태도, 일하는 방식도, 노후에 대한 기대도 달라졌다. 은퇴 후 새로운 일을 시작하거나 공부하고, 여행과 취미를 즐기며 적극적인 사회생활을 이어가는 시니어가 많아졌다. 자녀와 함께하는 노후보다 부부끼리, 혹은 혼자 살아가는 기간도 길어지고 있다.
이제 은퇴는 단순히 일을 그만두는 시점이 아니라, 이후의 긴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다시 설계해야 하는 전환점이 됐다. ‘어떻게 살 것인가’도 금융의 질문이다‘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은 언뜻 금융과 거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실제 은퇴 상담에서는 매우 현실적인 금융의 질문이다.
은퇴 후에도 일을 계속하고 싶은 사람과 퇴직과 동시에 여행 및 여가를 즐기고 싶은 사람에게 필요한 현금흐름은 다르다. 지금 사는 곳에서 계속 생활하려는 사람과 새로운 주거 형태를 고민하는 사람의 자산 운용도 같을 수 없다.
건강 상태와 가족관계 역시 중요한 변수다. 은퇴 초기에는 여행과 취미에 지출이 많다가도 시간이 흐르면 의료·간병비가 늘어날 수 있다. 부부가 함께 살아가는 시기와 배우자 한 명이 홀로 남은 이후에 필요한 생활비와 자산관리 방식도 달라진다.
결국 노후생활비를 하나의 수치로 계산하는 것만으로는 긴 은퇴생활을 설명하기 어렵다. 은퇴생활은 하나의 모습으로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계속 변하기 때문이다. 자산보다 먼저 ‘은퇴 후의 삶’을 그려야 한다그렇다면 은퇴설계도 달라져야 한다. 언제까지 일하고 싶은지, 어디에서 살고 싶은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싶은지, 건강이 나빠졌을 때는 어떤 돌봄을 받고 싶은지 먼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삶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그려지면 비로소 필요한 현금흐름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매달 반드시 필요한 생활비와 내가 즐겁게 살기 위해 쓰고 싶은 돈을 구분할 수 있고, 노후 후반기에 필요한 의료·간병비도 준비할 수 있다. 연금과 금융자산, 부동산을 언제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관한 기준도 자연스럽게 생긴다.
삶의 계획이 먼저이고, 금융은 그 삶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인 셈이다. 최근 시니어 금융이 연금과 투자, 세금 및 상속 같은 전통적인 금융 영역을 넘어 건강, 일자리, 주거, 문화와 여가 등으로 관심을 넓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고객이 어떤 삶을 원하는지 알지 못한 채 자산만 들여다본다면 그 사람에게 맞는 은퇴설계를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은퇴 후의 삶에는 정답이 없다. 누군가는 계속 일하고 싶고, 누군가는 여행하고 싶어 한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할 수도 있고, 새로운 배움이나 사회활동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원하는 은퇴의 모습을 그려본다는 것이다. 그래야 내가 가진 돈을 무엇을 위해, 언제,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다. 은퇴설계의 목적은 가장 많은 자산을 남기는 것도, 가장 높은 수익률을 올리는 것도 아니다. 내가 원하는 삶을 가능한 한 오래 지속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이제 은퇴설계의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 ‘얼마를 준비했는가’에서 ‘준비한 자산으로 어떤 삶을 만들어갈 것인가’로. 100세 시대의 은퇴설계는 결국 자산을 준비하는 것을 넘어, 그 자산으로 살아갈 삶을 준비하는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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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 하나은행 하나더넥스트 을지로라운지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