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초반 JYP엔터테인먼트는 거대한 성장의 벽에 직면해 있었다. 2000년대 후반 미국 진출에서 비롯된 참담한 실패의 후폭풍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회사의 재무 구조는 악화됐고 실적은 지루한 정체기에 빠졌다. 바깥에서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규모가 유례없이 팽창하며 SM·YG엔터테인먼트가 시장의 파이를 빠르게 집어삼키고 있었다.
가요계와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JYP가 빅3의 간판을 내려놓아야 하는 것 아니냐"라거나 "박진영의 시대는 끝났다"는 가혹한 평가가 흘러나왔다. 실제로 시가총액은 급감했고 신규 아티스트의 론칭 주기도 끝없이 늘어졌다. 겉으로 드러난 문제는 실적 부진이었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병목 현상의 진원지는 역설적이게도 회사를 일궈낸 장본인이자 최대 자산이었던 박진영 자신이었다.
초기 JYP의 모든 영광은 박진영이라는 걸출한 프로듀서 한 사람의 직관과 번뜩이는 감각에 빚지고 있었다. 작사·작곡·편곡은 물론 안무의 디테일, 앨범 재킷 디자인, 뮤직비디오의 시나리오, 심지어 무대 의상 단추 하나까지 박진영의 손을 거치지 않는 작업은 없었다. 박진영의 개인적 감각이 시대의 흐름과 완벽히 맞아떨어질 때는 비, 원더걸스, 2PM 같은 시대의 아이콘이 탄생했다.
그러나 회사의 덩치가 커지고 소속 아티스트가 늘어나면서 이 '1인 독점 기획 체제'는 치명적인 독으로 변질되었다. 모든 기획안과 음원 시안이 박진영의 책상 위에 산더미처럼 쌓여 최종 결재만을 기다렸다. 당시 박진영은 아티스트로서 무대에 서고 방송 활동을 병행하면서 한국과 미국을 오가는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물리적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그의 컨펌이 떨어지지 않으면 기획은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고, 아티스트들의 컴백 주기는 1년, 심지어 2년 가까이 기약 없이 미뤄졌다. 빠르게 변화하는 글로벌 팝 트렌드를 40대에 접어든 한 명의 두뇌로 모두 해석하고 선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오만이었다. 박진영은 훗날 이 시기를 회고하며 "내가 바로 회사의 가장 거대한 병목(Bottleneck)이자 핵심 리스크였다"고 참회하듯 털어놓았다. 자신이 일궈낸 창의적 역량이 어느새 회사의 미래를 가로막는 단단한 유리천장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박진영이 선택한 돌파구는 남들의 예상과 정반대였다. 대부분의 창업자 프로듀서들이 위기 상황에서 자신의 통제권을 더 강화하는 것과 달리, 박진영은 자신이 쥐고 있던 전권을 스스로 내려놓는 결단을 내렸다. 2018년 전격 선언된 'JYP 2.0'이라는 조직 혁신의 서막이었다.
그 핵심은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관행을 뒤엎은 '4대 본부제' 도입이었다. 기존 기획사들은 마케팅팀, A&R팀, 매니지먼트팀 등 기능별로 부서가 나뉘어 전 소속 아티스트의 업무를 순차적으로 처리하는 기능형 조직 구조를 취했다. 이 구조는 특정 아티스트에게 회사의 자원이 쏠리면 다른 아티스트의 작업이 멈추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졌다.
JYP는 이 수평적 구조를 완전히 파괴했다. 하나의 본부 안에 기획, 마케팅, 매니지먼트, A&R 인력을 모두 독립 배치해 마치 4개의 독자적 중소 기획사가 한 지붕 아래 공존하는 듯한 '사내 독립 기업(Company-in-Company)' 체제를 구축했다. 1본부는 2PM과 스트레이 키즈, 2본부는 잇지(ITZY), 3본부는 트와이스 등으로 전담 배치되었다. 각 본부는 다른 부서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체적 기획과 의사결정으로 컴백 일정과 앨범 콘셉트를 주도적으로 확정할 수 있게 되었다.
조직 개편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박진영 본인의 권한 박탈이었다. 앨범의 가장 중요한 열쇠인 타이틀곡 선정 권한을 박진영 1인의 감이 아닌, 사내 전문가와 외부 작곡가들로 구성된 다면 평가 위원회의 블라인드 테스트에 넘겼다. 박진영이 쓴 곡이라 하더라도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기준 점수를 통과하지 못하면 무자비하게 탈락했다.
실제로 트와이스의 수많은 메가 히트곡들이 박진영의 곡이 아닌 블랙아이드필승 등 외부 프로듀서의 곡으로 낙점됐다. 이 과정에서 박진영은 심사 결과에 일절 개입하지 않았다. 창업자이자 최대 주주인 프로듀서가 자신의 음악적 취향을 배제하고 회사의 시스템적 결과물을 온전히 수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동시에 글로벌 A&R 네트워크를 대대적으로 확장했다. 전 세계 유수의 탑라이너와 프로듀서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송캠프를 상시화하고, 체계적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연간 수천 곡의 데이터풀을 축적했다. 특정 개인의 영감에 기대지 않고 전 세계의 우수한 크리에이티브를 시스템 안으로 끌어들여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파이프라인을 완성한 셈이다.
혁신의 결과는 시장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의사결정 단계가 극단적으로 줄어들자 아티스트들의 활동 주기가 혁신적으로 단축됐다. 트와이스는 한 해에도 서너번씩 고품질의 앨범을 쏟아내며 한일 양국을 단숨에 평정했고 스트레이 키즈, ITZY 같은 차세대 주자들도 시스템의 지원 속에서 공백기 없이 성장 곡선을 그렸다. 영업이익률은 30%를 웃돌며 업계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고, 시총은 과거의 몇 배로 급증했다.
자본 시장은 환호했다. 박진영 1인의 리스크에 일희일비하던 불투명한 연예 기획사가, 예측 가능하고 지속 가능한 현금 흐름을 창출하는 '선진 시스템 기업'으로 재평가받았기 때문이다.
창업자가 자신이 이뤄낸 가장 강력한 성공 방정식, 즉 자신의 '직관'과 '천재성'을 스스로 부정하고 조직에 권한을 완전히 이양하는 것은 경영학적으로 가장 달성하기 힘든 기적에 가깝다. 박진영은 '내 감이 여전히 시장보다 우월하다'는 나르시시즘을 깨부수고, 겸허히 시스템의 부품으로 내려앉음으로써 회사의 체질을 완벽하게 탈바꿈시켰다.
이 JYP 2.0이라는 견고한 구조적 플랫폼이 완성되었기에, JYP는 비로소 한 개인의 영웅주의적 도전에 기대지 않고 글로벌 무대를 체계적으로 공략할 수 있는 거대한 엔진을 손에 넣게 되었다. 이 든든한 시스템의 뒷받침 속에서 박진영의 오랜 숙원이었던 '세계 시장 재도전'은 트와이스와 스트레이 키즈, 현지화 걸그룹이라는 정교한 화살이 되어 다시 한번 날아오를 준비를 마쳤다고 할 수 있었다.
<한경닷컴 The Lifeist> 홍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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