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들의 포트폴리오]
‘헤지펀드의 전설’로 불리는 조지 소로스가 설립한 소로스 펀드 매니지먼트가 지난 2분기 인공지능(AI) 관련 투자 포트폴리오를 재편했다. 최대 보유 종목인 아마존 주식을 대거 줄이는 한편 전력 회사와 데이터센터, AI 클라우드 기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했다. AI 산업의 성장을 뒷받침하는 인프라 시설로 투자 대상을 넓힌 모습이다.
소로스 펀드 매니지먼트의 올해 2분기 13F(주식 보유 현황) 공시에 따르면, 포트폴리오 비중 증가 상위 5개 종목에는 슈퍼 마이크로 컴퓨터를 포함해 아메리칸 일렉트릭 파워, 엔터지, 디지털 리얼티 트러스트 등이 이름을 올렸다. 전력 공급과 데이터센터 운영을 담당하는 기업들이 주요 매수 대상으로 떠올랐다.
전력·데이터센터로 넓힌 AI 투자
전력 회사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종목은 엔터지다. 소로스 펀드는 2분기 엔터지 보유 주식 수를 직전 분기보다 1084.2% 늘렸다. 기존 보유량의 약 11.8배로 확대한 것이다. 포트폴리오 내 비중은 1.19%포인트 상승했다. 엔터지는 미국 아칸소·루이지애나·미시시피·텍사스주에서 약 300만 고객에게 전력을 공급하는 기업이다. 원자력과 천연가스 등 다양한 에너지원을 활용해 전력을 생산하고 송전·배전 사업도 운영한다.
아메리칸 일렉트릭 파워는 신규 매수해 분기 말 기준 1.29%의 비중을 차지했다. 전력 회사는 AI 데이터센터 확대에 따른 전력 수요 증가의 수혜를 기대할 수 있는 업종이다. 서버를 가동하고 냉각 설비를 운영하려면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두 전력 회사에 대한 투자 확대는 AI 투자 열기가 반도체와 소프트웨어를 넘어 전력 인프라로 이어질 가능성을 염두에 둔 행보로 풀이된다.
데이터센터를 소유·개발·운영하는 부동산투자신탁(REIT·리츠) 디지털 리얼티 트러스트의 비중은 1.08%포인트 확대했다. 이 회사는 기업들이 서버와 통신장비를 설치할 공간과 전력·냉각 설비를 제공하고, 서로 다른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서비스를 운영한다. 클라우드 기업뿐 아니라 금융·제조·통신 등 다양한 업종을 고객으로 두고 있다. 전력 회사와 데이터센터 운영사에 함께 투자해 AI 인프라 확장의 여러 단계에 걸쳐 수익 기회를 찾는 전략으로 읽힌다.
AI 클라우드 기업 네비우스 그룹을 새로 담은 것도 주목할 만하다. 2분기 말 기준 포트폴리오 비중은 1.05%다. 네비우스는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대규모로 연결한 컴퓨팅 인프라를 구축하고, 기업들이 이를 활용해 AI 모델을 학습시키거나 서비스를 운영하도록 지원한다. 개발 도구와 클라우드 플랫폼을 함께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아마존만 유독 줄인 이유
네비우스는 지난해 9월 마이크로소프트와 5년간 174억 달러 규모의 AI 인프라 공급 계약을 맺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사용 규모를 확대하면 계약액은 최대 194억달러로 늘어날 수 있다. 소로스 펀드의 신규 투자는 대형 기술 기업들의 AI 설비 투자가 전문 인프라 공급업체의 매출로 연결될 가능성에 주목한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아마존 보유 주식 수는 직전 분기보다 39.2% 줄였다. 아마존 역시 클라우드 서비스인 아마존웹서비스(AWS)를 통해 AI 인프라 사업을 하는 기업이다. 아마존을 줄이면서 네비우스와 전력·데이터센터 기업을 확대한 것은 같은 AI 투자 안에서도 종목과 사업 영역별로 투자 비중을 조정한 움직임이다. 다만 공시만으로는 매도 이유가 차익 실현인지, 성장 전망이나 기업 가치에 대한 판단 변화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대규모 부분 매도에도 아마존은 분기 말 비중 3.46%로 제공된 주식 보유 순위에서 1위를 유지했다. TSMC가 3.06%로 뒤를 이었으며 알파벳 클래스A와 엔비디아는 각각 2.62%를 차지했다. 애플도 1.88%로 상위권에 포함됐다. 대형 기술주와 AI 반도체 기업을 주요 자산으로 유지하면서 투자처를 넓힌 것이다.
한편 금융정보 서비스 기업 S&P글로벌의 보유 주식은 추가로 늘렸다. 신용평가와 금융데이터·분석, 지수 사업 등을 통해 금융 시장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기업이다. 분기 말 주요 보유 종목에는 게임 회사 일렉트로닉 아츠(2.44%), 산업용 가스 기업 린데(1.70%), 스포츠·엔터테인먼트 기업 TKO그룹 홀딩스(1.43%)도 포함됐다. AI 관련 기업을 중심으로 투자를 재편하면서도 여러 업종에 자산을 배분했다.
하락 베팅을 거둬들인 신호
포트폴리오 비중이 가장 크게 줄어든 항목은 개별 주식이 아닌 상장지수펀드(ETF) 풋옵션이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를 추종하는 SPDR S&P500 ETF(SPY)의 풋옵션 비중은 7.79%포인트 감소했다. 풋옵션은 정해진 가격에 기초자산을 팔 수 있는 권리다. 주가 하락에 베팅하거나 보유 주식의 손실을 방어하는 데 활용된다.
에너지 관련 풋옵션도 축소했다. SPDR S&P 석유·가스 탐사·생산 ETF(XOP) 풋옵션 비중은 2.39%포인트, 에너지 셀렉트 섹터 SPDR ETF(XLE) 풋옵션은 2.02%포인트 줄었다. AI 클라우드 기업 코어위브(CRWV)의 풋옵션 비중도 1.62%포인트 감소했다. 해당 기업이나 업종의 주식을 매도한 것과 달리, 가격 하락 때 이익을 얻는 포지션의 공시 비중이 낮아진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증시와 일부 업종의 하락 위험에 대비해 포지션을 줄였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다만 곧바로 강세 전망으로 돌아섰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옵션 보유 감소에는 매도뿐 아니라 만기 도래나 행사 등이 영향을 줄 수 있고, 다른 상품으로 위험을 방어했을 수도 있다. 13F에는 옵션의 만기와 행사가격이 나오지 않으며, 옵션 관련 신고액도 실제 옵션 가격이 아닌 기초주식 가치를 기준으로 한다.
소로스 펀드 매니지먼트는 소로스가 설립한 글로벌 자산운용사이자 패밀리오피스다. 현재 열린사회재단의 주요 자산운용사 역할을 맡고 있으며, 돈 피츠패트릭이 최고경영자(CEO) 겸 최고투자책임자(CIO)를 맡고 있다. 상장·비상장주식과 채권, 외환 등 다양한 자산에 투자한다. 따라서 이번 공시는 소로스 개인의 직접적인 매매보다 운용사 차원의 투자 전략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이혜인 한국경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