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에게 가장 필요한 역량은 무엇일까.
요즘이라면 ‘인공지능(AI) 활용 능력’이라는 답이 먼저 나올지도 모른다. 실제로 공직사회는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정부는 최근 ‘AI 민주정부’를 내걸고 대민서비스와 일하는 방식의 대대적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복지·안전·세금 등 국민 생활과 밀접한 분야에 AI 상담을 확대하고, 24시간 이용할 수 있는 행정서비스도 강화한다. 공무원이 법령과 판례를 검토할 때 활용할 수 있는 ‘AI 법령 비서’도 등장했다.
행정의 속도는 분명 빨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공무원에게 사람을 대하는 서비스 교육은 예전보다 덜 중요해질까. 아니다. 오히려 반대라고 생각한다. AI가 행정의 속도를 높일수록 공무원의 ‘사람을 대하는 능력’은 더 중요해진다.
단순한 문의와 서류 발급을 AI가 해결해주는 시대가 되면 사람이 직접 마주해야 하는 민원은 오히려 더 복잡해질 수 있다. 규정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고, 이해관계가 충돌하며, 감정이 개입된 문제들이 사람의 몫으로 남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 공무원 서비스 교육도 달라져야 한다. “친절하게 인사하세요.”“미소를 지으세요.”“상냥하게 말하세요.” 이런 교육만으로는 부족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친절의 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이해하는 능력이다.
민원실에서 하루에도 수십 명을 만나는 공무원에게는 익숙한 업무가 있다. 하지만 민원인에게는 그렇지 않다. 누군가는 아이의 출생신고를 위해 처음 주민센터를 찾는다. 누군가는 가족을 떠나보낸 뒤 사망신고를 하러 온다. 누군가는 사업 허가 하나에 생계가 걸려 있고, 누군가에게는 복지 지원 여부가 다음 달 생활과 연결돼 있다. 공무원에게는 오늘 처리해야 할 여러 건 가운데 하나지만, 민원인에게는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한 건일 수 있다.
서비스 마인드는 바로 이 차이를 이해하는 데서 시작한다. 공공서비스에서 공감은 모든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규정을 바꿔주는 것도 아니다. 상대가 왜 이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이해한 상태에서 설명하는 것. 그것이 공감이다.
“규정상 안 됩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많이 답답하셨을 것 같습니다. 다만 이 경우에는 규정상 처리가 어렵습니다. 대신 가능한 방법이 있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어떨까. 결과는 같아도 경험은 전혀 달라진다. 나는 서비스의 수준이 오히려 ‘해줄 수 없을 때’ 더 잘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되는 일을 친절하게 처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안 되는 일을 상대가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데 진짜 실력이 필요하다. “제 담당이 아닙니다” 다음의 한 문장이 중요하다. 민원인 입장에서 가장 막막한 순간 중 하나가 있다. “그건 저희 부서가 아닙니다.”“제가 담당자가 아닙니다.”“다른 곳에 문의하셔야 합니다.” 행정적으로는 모두 맞는 말일 수 있다. 하지만 시민은 조직도를 공부하고 관공서를 찾아오지 않는다. 어느 과에서 무엇을 담당하는지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좋은 공공서비스는 “제 업무가 아닙니다”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 업무는 ○○부서에서 담당하고 있습니다. 연결 방법을 안내해드리겠습니다.” 한 문장이 더해졌을 뿐이다. 하지만 그 한 문장이 ‘떠넘김’과 ‘연결’의 차이를 만든다. 민원인이 원하는 것은 언제나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것만은 아니다. 적어도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왜 안 되는지, 이제 무엇을 하면 되는지는 알고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공무원 교육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매뉴얼을 암기시키는 교육보다 민원인의 여정을 이해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어느 지점에서 답답함을 느끼는지, 어떤 표현에서 무시당했다고 느끼는지, 같은 내용을 어떻게 설명해야 납득하기 쉬운지를 실제 사례로 훈련해야 한다.
친절하되, 무조건 참으라는 뜻은 아니다. 물론 공무원에게 친절만 강조해서도 안 된다. 악성 민원은 다른 문제다. 폭언과 욕설, 반복적인 괴롭힘과 위협까지 참으면서 웃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서비스가 아니다. 공무원 역시 존중받아야 한다. 그래서 지금의 서비스 교육에는 두 가지 능력이 함께 필요하다.
공감하는 능력과 경계를 세우는 능력이다.
정당한 불편과 부당한 요구를 구분해야 한다. 민원인의 감정에는 공감하면서도 불가능한 요구에는 분명하게 선을 그을 수 있어야 한다. “말씀하신 불편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다만 이 부분은 규정상 처리할 수 없습니다.” 공감과 원칙은 양자택일이 아니다.
서비스 마인드란 무조건 낮추는 자세가 아니다. 존중하되 원칙을 지키는 태도다.
공무원을 보호하는 것과 국민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역시 서로 반대되는 가치가 아니다. 존중받는 직원이 국민을 더 안정적으로 존중할 수 있다. 민원실에서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정부의 얼굴이나 마찬가지다.
기업에서는 고객이 직원을 통해 브랜드를 경험한다. 공공기관도 다르지 않다. 국민은 ‘정부’라는 거대한 조직을 직접 만나지 않는다. 주민센터 창구에서 만난 공무원을 만나고, 구청에 전화했을 때 전화를 받은 담당자를 만나고, 민원을 접수했을 때 답변해준 직원을 만난다. 그 짧은 순간에 국민은 정부를 경험한다.
그래서 공무원의 표정과 말투, 설명 방식은 개인적인 친절의 문제가 아니다. 그 순간 공무원 한 사람은 국민과 정부가 만나는 접점이 된다.
“공무원이 친절했다”는 기억은 개인에게서 끝나지 않는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구나.”“나를 귀찮은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구나.” “이 기관은 믿을 만하구나.” 개인에 대한 인상이 조직에 대한 신뢰로 이어진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행정 처리는 정확했지만 무시당했다는 느낌을 받았다면 국민에게 남는 것은 정확성보다 불쾌감일 수 있다. 결국 서비스는 행정의 주변 업무가 아니다. 행정에 대한 신뢰를 만드는 과정이다.
AI 시대, 공무원 교육은 오히려 더 ‘사람다워져야’ 한다. 정부는 올해 ‘국민에게 친절한 정부’를 AI 정부의 중요한 방향 가운데 하나로 제시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친절’과 ‘사람’의 가치가 다시 중요해지고 있는 셈이다.
AI는 민원을 분류할 수 있다. 법령도 찾아준다. 필요한 서류도 안내한다. 반복되는 질문에는 사람보다 빠르게 답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사람에게 남아 있는 일이 있다. 무엇을 물어봐야 할지조차 모르는 사람에게 먼저 질문하는 것. “안 된다”는 말을 들은 사람의 표정을 살피는 것. 화난 말투 뒤에 숨어 있는 진짜 요구를 찾아내는 것. 원칙을 지키면서도 상대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 않는 것. 이것은 지식만의 영역이 아니다. 태도의 영역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공무원 교육은 친절교육을 넘어 ‘관계 역량 교육’으로 진화해야 한다. 실제 민원 사례를 놓고 대응해봐야 한다. 자신의 말투와 표정도 점검해야 한다. 갈등 상황에서 어떤 단어를 선택할 것인지 훈련해야 한다. 대면, 전화, 온라인이라는 접점에 따라 소통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무엇보다 공무원 스스로 질문해볼 필요가 있다. “나는 오늘 민원인의 문제만 처리했는가, 아니면 그 사람까지 존중했는가.”
AI가 행정을 더 빠르게 만드는 시대가 왔다. 그러나 빠른 행정이 반드시 좋은 행정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민원인이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한 번 더 눈을 맞추는 것. 어려운 행정용어를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는 것. 안 되는 이유만 말하지 않고 가능한 다음 방법을 알려주는 것. 그리고 불가능한 요구에는 예의를 갖춰 분명하게 선을 긋는 것. 이런 작은 순간들이 모여 국민이 체감하는 정부가 된다.
AI는 민원을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국민에게 ‘존중받았다’는 기억을 남기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그래서 AI 시대일수록 공무원 서비스 교육은 더 중요해진다. 국민은 관공서에서 단순히 민원 처리 결과만 가지고 돌아가지 않는다. ‘나는 이곳에서 어떻게 대우받았는가’라는 기억을 함께 가지고 돌아간다. 그 기억이 쌓여 '정부에 대한 신뢰'가 된다.
<한경닷컴 The Lifeist> 퍼스널이미지브랜딩랩 & PSPA 대표 박영실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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