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전 캐나다 서부 전역을 누비던 5톤 배송 트럭 운전석에는 한 중년 남성이 앉아 있었다. 대기업 임원의 화려한 명함을 내려놓고 맨바닥에서 다시 시작한 그는 오늘날 캐나다 시장 내 한국 주류 판매량을 50배 폭발적으로 끌어올린 K-주류 세계화의 입지전적 인물로 우뚝 섰다. 황선양 코비스엔터프라이즈 회장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가 이끄는 코비스는 현재 캐나다 10개 주정부에 한국 주류와 12개국 200여 종의 와인을 직공급하며 북미 최대의 주류 수입·유통 거상으로 성장했다.
그의 삶은 위기를 기회로 뒤집은 반전의 연속이다. 두산그룹 오비맥주에서 22년간 영업과 구조조정을 지휘하며 최고 실적을 냈지만 1997년 외환위기 때 전 재산을 잃는 큰 시련을 겪었다. 가족을 캐나다로 보낸 7년의 뼈를 깎는 기러기 생활 끝에 2008년 캐나다에서 다시 합류한 황 회장은 물류 현장부터 몸으로 부딪치며 유통의 본질을 꿰뚫었다. 이러한 현장 DNA는 단기간에 2위 한국 소주 브랜드의 현지 점유율을 63.4%까지 끌어올리는 압도적 영업력의 굳건한 원천이 되었다.
단순한 수입에 만족하지 않은 그는 ‘창조적 파괴’를 감행했다. 2015년 세계 최초로 유자 맛 소주를 선보여 돌풍을 일으킨데 이어 2023년에는 북미 최초의 자체 개발 탄산 캔소주 ‘소주 스프리츠(Soju Spritz)’를 전격 출시했다. 현지인의 입맛과 저도수 트렌드를 정밀 타격한 현지화 전략 덕분에 현재 고객의 80% 이상이 현지 캐나다인일 만큼 시장의 판도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북미 주류 사회의 일상에 K-음주 문화를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한 것이다.
비즈니스 밖에서도 그의 개척 정신은 묵직한 울림을 남겼다. 캐나다 국경서비스청(CBSA)이 한국 수입품 샘플에 부과하던 시대착오적 관세 벌과금 규정을 연방정부에 제소해 2015년 마침내 규정 개정을 이끌어냈다. 한국 수출 기업들이 겪던 부당한 무역장벽을 통째로 허문 쾌거였다. 또한 현지 정부와 언론을 끈질기게 설득해 관행적으로 쓰이던 ‘Chinese New Year(중국 춘절)’ 표기를 ‘Lunar New Year(음력설)’로 공식 변경시켰다. 아시아 커뮤니티의 포용성과 대한민국의 자긍심을 바로 세운 위대한 민간 외교관의 면모다.
창업 이후 5개 계열사를 전면 무차입 경영으로 이끌며 내실을 증명한 황 회장은 이제 성공을 넘어 ‘차세대 리더 육성’이라는 더 큰 청사진을 그린다. 세계한인무역협회(World-OKTA) 핵심 임원으로 활약하며 청년들이 글로벌 무대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전폭적인 멘토링을 쏟아붓고 있다. “청년들이 세계로 나가 경제 영토를 넓히는 것이 대한민국의 진정한 미래”라고 역설하는 뚝심의 리더. 5톤 트럭에서 시작된 그의 거대한 도전은 이제 수많은 청년들의 든든한 글로벌 나침반이 되어 더 넓은 세계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고 있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