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연의 시적인 순간] 초급반에서 배운 것

입력 2026-08-12 17:37
수정 2026-08-13 00:10
“나도 너희 선생님에게 배우고 싶다.”

내가 초급반 선생님 자랑을 많이 하기는 했다. 다니는 수영장도 다르고 수영 선생님도 다 다르지만 같은 시기에 수영에 빠져든 친구들 덕분에 어느새 일상이 수영으로 가득 찼다. 온 세상이 수영장이다. SNS에도 수영 관련 피드만 뜬다. 그런데 구립 수영장 빈자리는 땡볕 아래 그림자 한 조각처럼 귀해서 등록하기까지 꽤 애를 먹었다. 비어 있는 자리는 단 한 자리. 인터넷 속도가 성공을 좌우한다는 말을 새겨듣고 PC방까지 갔다. 드디어 석 달 만에 화·목 오전 10시 초급반 등록에 성공했다. 수영을 시작하기도 전에 접영 100m를 완주한 것처럼 가슴이 벅찼다.

그렇게 귀한 초급반 사람들을 만났다. 수영이 끝나면 센터 입구 쪽 커피숍에 모인다. 삶은 달걀과 음료를 앞에 놓고 수영 이야기를 한다. 오늘 누가 잘했는지, 누가 안 나왔는지, 누구의 자세가 좋아졌는지, 수다가 끝도 없이 이어진다. 중급반으로 올라간 두 분도 함께다. 수영 실력은 늘었는데 마음은 아직 초급반에 남아 있는 모양이다.

초급반이라는 말 참 좋다. 조금 서툴고, 아직 잘하지 못하고 그래서 누군가에게 배우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렇지 않게 드러내는 말. 나이를 먹을수록 잘하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지는데, 초급반에서는 많은 걸 내려놓게 된다. 오히려 초급이라는 사실이 부족한 서로의 어깨를 토닥이게 하는 것 같다.

초급반 선생님은 정말 열심히 가르친다. 설명할 때마다 마음을 다 태우나 싶을 정도로 눈빛이 이글거린다. 온몸으로 가르친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뭐든 대충 설명하고 넘어가는 법이 없다. 직접 시범을 보이고, 한 사람 한 사람 자세를 잡아주느라 쉬지도 않는다. 가끔 그 눈을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난다. 저렇게까지 진심일 수 있나.

누군가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 이상하게 나도 잘하고 싶어진다. 팔을 조금 더 곧게 뻗고 숨을 조금 더 정확하게 쉬고 싶어진다. 그의 눈에 담긴 진심이 내 몸으로 옮겨오는 것 같다.

나도 한때는 이글이글 타오르던 때가 있었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건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보고 싶었던 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익숙함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됐다. 몇 번이고 해온 일에는 마음을 덜 쓰게 되고, 잘 알고 있는 일일수록 준비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잘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잘하려고 애쓰는 마음을 대신했다.

초급자의 심정을 헤아리며 세심하게 설명하는 선생님 덕에 다음날엔 나도 시 창작자들을 위한 강연 준비를 열심히 했다. 강연을 듣는 사람들은 누구인지, 그들에게 내가 정말 전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고민했다. 그리고 내가 가진 것을 어떻게 하면 제대로 건넬 수 있을지 오래 생각했다. 마치 이런 강연을 처음 하는 사람처럼 약간의 긴장감마저 들었다.

수업을 듣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날의 수업이 얼마나 준비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수영 초급반 선생님에게서 최선을 다해 전달하려는 마음을 봤듯, 그런 마음은 어떻게든 상대에게 가닿는다.

행사 당일, 이런저런 사정으로 내게 주어진 강연 시간이 늘어났지만 당황하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 내일을 생각한 어제의 내가 있었다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나는 그동안 내 능력을 과신하며 살았다. 설렁설렁 해도 남들이 최선을 다한 것보다 나을 때도 있었고 그걸 핑계 삼기도 했다. 잘해서 뿌듯한 것과 최선을 다해서 뿌듯한 것은 조금 다른 것 같다. 내가 가진 능력을 믿되 내가 만나는 사람과 내가 맡은 일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보여줘야지. 수영을 배우러 갔다가 이런 것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