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광엽 칼럼] '재산권 경시'가 자초할 시스템 위기

입력 2026-08-10 17:45
수정 2026-08-11 05:58
세제 개편안이 발표된 지 1주일이 지났지만 부동산 민심이 여전히 살벌하다. 법제처 국민참여입법센터에 쇄도하는 불만(입법 의견)만 하루 1000여 건이다. 역대 최대 조세저항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싶다. ‘정책이 아니라 국가폭력’이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다.

야당 논평처럼 “국민 재산권에 대한 전면 공격”의 측면이 없잖다. 조세제도 설계 시 ‘와그너 원칙’이란 게 있다. ‘재산을 팔아 세금을 내는 ‘원본 잠식’에 이르면 안 된다’는 원칙이다. 담세력을 초과하는 세제는 지속불가능하다. 정부안대로면 2.7%인 종부세 최고세율은 5%(농특세 포함 시 6%)로 치솟는다. 십수 년 뒤 원본 완전 잠식을 걱정해야 할 정도의 고율이다. 정부는 2008년 종부세 인하 개편 당시 최고세율 3%를 “원본 잠식 수준”으로 평가한 바 있다. 비거주 1주택자들의 재산 박탈 위기감이 특히 크다. 곧 종부세가 4~5배씩 높아져 재산 강제 처분이 잇따를 판이다.

장기보유특별공제 ‘10억원 한도’ 신설도 논란이다. 우리 헌법은 ‘소급입법에 의해 재산권을 박탈할 수 없다’(13조)고 명시한다. 수십 년 전 집 구매 시 약속받은 공제권이 사후적으로 회수된다면 소급입법으로 볼 여지가 다분하다. 비거주자의 장기보유특별공제(최대 40%) 폐지도 마찬가지다. 장특공제는 기본적으로 장기에 누적된 물가 상승 효과로 양도차익이 과도하게 계상되는 ‘결집 효과’를 막는 장치다. 이 결집 효과는 당연히 거주자 주택이냐 비거주자 주택이냐를 가리지 않는다.

근대 이전에 재산권은 군주 귀족 그리고 일부 엘리트 집단의 특권이었다. 보편적 기본권으로 자리 잡은 건 시민혁명을 거치면서다. 프랑스혁명 당시 흘린 민중의 피가 ‘인권선언문’ 속의 소유권 신성불가침 조항으로 탄생했다. 현대 문명국은 재산권을 ‘최고의 인권’으로 꼽기도 한다. 사유재산이 없는 개인은 욕구를 실현할 자유를 상실하고 권력에 맞서는 주권자로서의 역할도 어렵기 때문이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불가피하게 재산권을 제한할 때도 과잉금지, 명확성, 비례성 원칙이 필수다.

광장을 사랑하는 한국 진보진영이 시민혁명의 선물인 재산권에 둔감한 것은 한 편의 소극이다. 더불어민주당 사회민주당 등 범진보 의원 10명은 전세계약 갱신청구권 행사를 1회(2+2년)에서 2회(3+3+3년)로 늘리는 법안까지 발의했다. 재산권 행사가 9년간 사실상 스톱되면 오히려 전세 매물은 잠기고 말 것이다.

재산권을 둘러싼 논란과 갈등은 점입가경이다. 지난주에는 소상공인들이 재산권을 침해당했다며 헌재에 소장을 냈다. 최저임금법에서 ‘업종별 구분 적용’을 허용하고 있음에도 정부가 획일적인 최저임금을 고집해 생존 위기에 처했다는 호소다.

가장 걱정스러운 흐름은 ‘법인 재산권’ 경시다. 법인(기업)도 자연인처럼 다양한 권리·의무의 주체이며 당연히 재산권도 가진다. 재산권 침해 시 파장도 자연인보다 훨씬 크다. ‘n% 성과급’ 관련 갈등도 법인 재산권 경시의 발로다. 근로자는 회사 재산(이익)에 대한 ‘고정청구권자’다. 예상할 수 있는 인건비(상여금 포함) 범위 내로 배분받을 권리가 ‘고정’된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영업이익의 n%’를 고집하는 것은 법인 재산권에 대한 무지이거나 부정이다.

공정위발 법인 재산권 침해가 특히 심각하다. 담합 시 ‘지분 매각’을 강제하는 조치를 예고했다. 지분이 법인 재산권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비례성 원칙에 역행이다. 천문학적 과징금 남발은 아찔하다. 며칠 전 15개 증권사·은행에 국고채 입찰 담합 혐의로 최대 15조원이라는 천문학적 과징금을 예고했다. ‘영업 수익’(채권 매수매도 금액 차) 기준으로 매기던 과징금을 ‘입찰 금액’으로 변경한 결과라 공감하기 어렵다.

번영하는 경제에 필요한 한 가지를 꼽으라면 대다수 학자가 ‘섬세한 재산권 보호’를 지목한다. 역사적 고찰의 결과다. 법인의 정당한 손해배상을 제한하는 노란봉투법, 대주주의 핵심 재산권인 의결권, 경영권을 묶는 상법이 방향 착오 입법인 이유다. 재산권은 민주주의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사유재산이 행정부 자의에 의해 불확실해지고 재산이 적은 이들의 인질이 되면 자유사회의 종언”(빌헬름 뢰프케)이다. 재산권에 대한 의구심 확산만으로도 자유경제 시스템은 흔들리게 된다.

백광엽 수석논설위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