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공정위 '기계적 잣대'에 막힌 M&A…그 틈 노리는 中

입력 2026-08-10 18:00
수정 2026-08-19 15:50

도레이첨단소재의 연성동박적층판(FCCL) 사업을 국내 사모펀드(PEF)가 인수하는 거래를 공정거래위원회가 막아서면서 국내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기술이 중국으로 넘어갈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공정위 제동에 거래가 무산될 조짐을 보이자 중국 업체들이 인수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타진하고 있다. ◇ 지나치게 협소한 시장 획정10일 정부 안팎에 따르면 국내 PEF 운용사 어펄마캐피탈이 도레이첨단소재의 FCCL 사업부를 약 1200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맺고 지난해 6월 공정위에 신고한 기업결합의 승인 절차가 1년 넘게 지연되고 있다.

어펄마가 지난해 4월 FCCL 제조업체 플렉시온(옛 SK넥실리스 박막사업부)을 사들인 데 이어 추가 인수에 나선 것이어서 FCCL 시장의 경쟁이 제한될 우려가 크다는 게 공정위 심사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FCCL은 유연하게 구부러지는 얇은 동박판이다. 스마트폰과 TV 디스플레이에 들어가는 핵심 소재다. 도레이첨단소재와 플렉시온은 그중에서도 플라스틱 필름에 구리 입자를 분무기처럼 뿌려 얇은 구리막을 만드는 스퍼터링 방식 FCCL을 제조하는 업체다. 스퍼터링 방식 FCCL을 생산하는 주요 업체는 플렉시온과 도레이첨단소재, 일본 스미토모 세 곳이다. 어펄마가 플렉시온에 이어 도레이첨단소재를 인수하면 이 시장의 60% 이상을 점유하게 돼 경쟁이 제한된다는 게 공정위의 판단이다.

업계에선 공정위가 시장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기계적으로 경쟁 제한성을 판단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스퍼터링 방식 FCCL 시장은 전체 FCCL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3%에 불과하다. 스퍼터링 방식 FCCL로만 관련 시장을 획정하면 주요 사업자 세 곳 중 두 곳이 한 몸이 돼 거대 사업자가 탄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라미네이팅과 캐스팅 방식을 포함한 전체 FCCL 시장으로 보면 이들은 주요 사업자로 보기도 어렵다.

공정위는 다른 두 방식에 비해 스퍼터링 방식이 기술 수준이 높아 시장을 독립적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디스플레이산업 밸류체인을 살펴보면 스퍼터링 방식 FCCL은 대체 불가의 영역으로 보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스퍼터링 방식 FCCL은 99% 이상이 디스플레이용 칩온필름(COF)을 제작하는 데 사용된다. 사실상 COF에 종속된 부품이다. 디스플레이에 신호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COF는 칩온글라스(COG)와 칩온플라스틱(COP) 등으로 대체가 가능하다. 원천 기술의 특허 독점 등이 없어 진입 장벽이 높은 것도 아니다. 실제 스퍼터링 방식 FCCL 업체는 COF 업체들에 종속돼 제조원가 상승분을 판매가격에도 반영하지 못하는 등 가격 결정권을 잃은 상황이다. ◇ 中 업체는 ‘번호표’ 뽑고 대기 중공정위가 경쟁 제한 가능성을 이유로 인수합병(M&A)을 막아서자 중국 업체들은 ‘번호표’를 뽑고 기회를 엿보고 있다. 이미 복수의 중국 업체들이 도레이첨단소재에 기업결합 부결 시 FCCL 사업부를 인수하겠다는 의향을 전달했다. 업계에선 기업결합 승인이 계속 지연되면 도레이첨단소재가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중국 업체에 사업부를 넘길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업체들은 한국이 장악한 글로벌 디스플레이 시장을 2010년대 초반부터 무서운 속도로 추격하고 있다. 중국 정부의 적극적 정책 지원을 등에 업고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 등의 LCD(액정표시장치) 공장을 차례로 인수한 데 이어 최근에는 산업 수직계열화를 위해 핵심 소재 사업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 기업이 도레이첨단소재 FCCL 사업부를 품고 시장에 진입하면 가격 경쟁은 더욱 심해지고 시장을 중국 기업에 잠식당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예상이다. 디스플레이업계 관계자는 “공정위가 FCCL 시장을 중국에 내주라고 등을 떠미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심사 중인 사건에 관해선 언급하기 어렵다”면서도 “불확실한 상황을 예상해서 심사하는 건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