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무대로 돌아간 '춤추는 지휘자' 백윤학… 창작오페라 '기억의 향기'

입력 2026-08-10 18:50
수정 2026-08-12 10:51


오펜바흐의 '캉캉'을 춤추듯 지휘한 쇼츠 영상으로 조회 수 1300만 회를 기록한 백윤학. '춤추는 지휘자'라는 수식어가 대중에게 더 친숙한 그가 오는 9월 오페라 지휘봉을 잡는다. 무대는 인공지능(AI)과 동거하는 몰락한 싱어송라이터의 이야기를 그린 창작오페라 <기억의 향기>다.

대중에게 알려진 백윤학의 이미지는 '춤추는 지휘자'지만 그의 음악 이력을 살펴보면 뜻밖에도 오페라와 인연이 깊다. 미국 커티스 음악원에서 지휘를 공부한 그는 이후 오페라 코치 과정을 밟았고 미국 오페라 컴퍼니에서도 일했다. 그는 지난해 한 방송사와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본래 오페라를 전문적으로 공부했지만, 국내 오페라 제작 과정에 참여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오페라 <기억의 향기>가 백윤학에게 단순히 활동 영역을 넓히는 의미가 아니다.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만들어내는 동시에 성악가의 호흡과 가사, 극의 흐름까지 끌고 가야 하는 오페라 지휘는 교향곡 지휘와 성격이 다르다. 백윤학이 오페라 코치로 공부하며 쌓은 경험을 실제 무대에서 어떻게 풀어낼지가 이번 공연의 관전 포인트 가운데 하나다. 그는 과거 한 인터뷰에서 "오페라 코치가 성악가의 음정과 발음뿐 아니라 작품과 캐릭터까지 함께 살피는 역할"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가 선택한 작품도 독특하다. <기억의 향기>에서 AI는 공연 제작을 돕는 기술이나 화려한 무대 장치가 아니다. 인공지능이 극중 등장인물로 들어온다.

주인공 구무진은 한때 음악계를 주름잡았지만 지금은 지방 축제에 쓰일 음악을 만들며 근근이 살아가는 싱어송라이터다. 그의 유일한 동거인은 '아카시아'라는 이름의 AI다. 처음에는 무심하게 데이터를 읊는 존재에 가깝지만 무진과 함께 살아가면서 서서히 인간의 감정을 학습한다.



최근 공연계에서는 AI를 영상 제작이나 무대 연출 등에 접목하려는 실험이 이어지고 있다. <기억의 향기>의 접근은 조금 다르다. AI 기술을 어떻게 공연을 만드는가의 문제로 다루기보다는 AI와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시대에 인간의 기억과 감정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인다. 작품은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플래시백 구조를 통해 상실과 후회, 기억과 치유의 과정을 펼쳐낸다.

무대의 중심에는 바리톤 양준모가 있다. 음악은 현악4중주와 플루트, 피아노로 구성된 악단이 맡는다. 대규모 오케스트라의 물량감보다 성악가의 목소리와 실내악적인 음향을 밀착시키는 방식이다. 바리톤 최은석과 소프라노 김예은도 출연한다.


<기억의 향기>는 유튜브 커버 영상 합계 100만 회를 기록한 동명의 노래를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2017년 처음 무대에 선보인 후 이번 공연을 위해 작곡가 구모균과 대본가 사성구가 작품을 다시 손질했다. <양철지붕>, <나부코> 등 선이 굵은 오페라 무대를 선보여 온 오페라연출가 장서문이 작품을 맡았다. 제작진은 재공연보다는 '재탄생'에 가까운 새로운 버전을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이번 공연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6 공연예술창작주체 사업' 선정작이다. 제작진은 연극적 요소와 음악극의 감각을 전통적인 오페라 문법에 결합한 형식을 '리얼리티 오페라'라고 부른다. 슬럼프와 상실, 스트레스, 관계의 공백처럼 동시대의 감정을 오페라 안으로 끌어들이겠다는 것이다.



작품을 제작한 오페라팩토리 박경태 대표는 "이 작품은 창작오페라 생태계를 다양화하기 위해 만든 작품이다"라며 "연극적 요소가 큰 2인극 형식에 현실적 소재를 통해 관객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데 초첨을 맞췄다"고 말했다. 이어 "동시대의 감각에 맞는 음악과 연출로 공연을 보는 관객이 자기 자신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조동균 기자 chodog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