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대출 급증세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달 국내 전 금융권 가계대출 잔액은 전달보다 증가폭을 키워 한 달 만에 5조원가량 늘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5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증가 폭은 크게 둔화했지만 아직 ‘대출 빗장’을 걸지 않은 지방은행과 인터넷전문은행, 2금융권을 중심으로 가계대출이 불어난 결과다. 금융당국의 전 금융권 ‘대출 옥죄기’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지방은·상호금융 ‘공격 영업’
1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달 31일 기준 732조812억원으로 집계됐다. 전월 말(730조9671억원) 대비 1조1141억원 늘었다. 9월(5조6029억원) 증가 폭과 비교하면 20% 이하로 축소됐다. 전체 가계대출이 줄어든 지난 3월(2조2238억원 감소) 이후 증가 폭이 가장 작다.
주요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증가세가 크게 둔화한 것은 금융당국의 전방위적 압박 때문이다. 정부는 9월 개인의 대출 한도를 제한하는 2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시행에 들어갔다. 각 은행이 자체 관리에 나서라는 압박도 이어갔다.
은행들은 다주택자 주택담보대출을 중단하고 ‘갭투자’에 활용되는 전세대출을 제한하는 등 조치를 시행했다. 연 3%이던 주담대 금리도 연 4% 이상으로 줄줄이 인상했다.
그러자 대출 수요는 지방은행과 인터넷은행, 농·수·신협, 새마을금고 등에 몰렸다. 지방은행은 주담대 금리를 시중은행보다 낮게 책정하며 대출 수요자를 끌어들였다. 부산은행의 대표 주담대 상품인 ‘ONE주택담보대출’ 최저금리는 지난달 8일 기준 연 3.76%로 국민은행(연 3.99%)과 신한은행(연 4.26%) 등 시중은행보다 낮다. 같은 날 경남은행의 ‘BNK모바일주택담보대출’도 최저 금리가 연 3.99%로 내려갔다.
인터넷은행이 중도상환수수료 전액 무료를 내걸면서 대출받기 위해 이용자가 몰리는 ‘오픈런’도 벌어졌다. 새마을금고 등 일부 상호금융사는 신규 주택단지 입주자에게 중도금 및 잔금대출을 낮은 금리에 공격적으로 공급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전 금융권의 가계대출 증가세는 크게 꺾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상각 효과’를 제외하면 지난달 2금융권 가계대출 증가 폭만 2조원에 달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주담대뿐만 아니라 신용대출, 카드론, 보험계약대출의 증가 폭 역시 만만치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당국 “2금융권 밀착 관리”금융당국은 2금융권 ‘밀착 관리’에 들어갔다. 지난달 두 번에 걸쳐 가계부채 점검 회의를 열고 “은행이 가계대출을 축소한 틈을 탄 ‘기회주의적 영업’을 벌이지 말라”는 경고까지 했다. 특히 상호금융사는 주담대 위주의 손쉬운 영업에 치중하기보다 은행권에서 충족되기 어려운 다양한 자금 수요나 중·저신용자에 대한 자금 공급에 집중해야 한다는 주문을 내놨다. 보험계약대출, 카드론 등 ‘불황형 대출’까지 늘어나는 추세여서다.
금융당국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최근 2금융권 가계부채를 살펴보면 주담대가 절반 수준”이라며 “일률적으로 규제했다간 서민의 ‘돈줄’이 막힐 수 있다”고 말했다. DSR 등 가계대출 규제를 일괄적으로 강화하지 않고 각 금융사를 개별적으로 압박하는 ‘두더지 잡기식’ 대응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한종/정의진 기자 onebe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