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원장 횡령으로 퇴출…"복귀시켜달라"는 노조의 운명은

입력 2024-09-14 20:00
수정 2024-09-14 20:24


한국노총이 전임 위원장의 조합비 횡령 비리가 불거진 건설노조를 퇴출한 것은 적법했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노조는 "징계 과정에서 소명 기회가 없었고, 위원장 개인 일탈일 뿐"이라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법 민사13부(최정인 부장판사)는 전국건설산업노조가 한국노총을 상대로 "제명 징계 결정이 무효임을 확인해 달라"며 낸 소송에서 최근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2007년 설립된 전국건설노조는 조합원 수가 한때 8만 명에 달했던 거대 노조였다. 다만 2021년경 진병준 전 위원장이 조합비 수억 원을 개인 용도로 횡령하고, 이 과정에서 노조의 비정상적인 회계 운영 실태가 드러나며 논란을 빚었다. 상위 연합단체인 한국노총은 이듬해 4월부터 "조직의 운영을 정상화하라"고 요구했지만, 진 전 위원장은 끝내 7월 구속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노총은 곧바로 조합 대표자 회의를 열고 상벌위원회를 구성해 "노총의 조직 질서를 문란하게 하고 명예를 훼손했다"며 건설노조의 제명 징계를 의결했다. △조합비 횡령 묵인·방조 △부정선거 지시 △정상화 요구 불이행 등이 이유였다. 이후 열린 대의원대회에서는 재적 대의원 929명 중 790명이 투표하고, 742명이 찬성해 제명 안건이 가결됐다. 건설노조는 별도로 대의원 명단을 제출하지는 않았다.

노총에서 퇴출당한 건설노조는 2023년 육길수 신임 위원장을 필두로 노총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노조 측은 "대의원 명단을 통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소명 기회가 박탈됐다"며 대의원대회의 절차를 문제 삼았다. 또한 "진 전 위원장 개인 일탈 책임을 노조에 부담시키는 것은 부당하다"며 "조합원들이 침해받는 이익을 고려하면 과도한 징계"라고 주장했다.

법원은 노조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일부 조합원이 상벌위원회에서 징계에 대해 진술하고 소명서를 제출했다"며 "대의원대회 당시 소명 기회가 부여되지는 않았지만, 상벌위와 대표자 회의에서의 판단이 연속으로 이어지는 점을 고려하면 소명권이 배제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징계 사유도 명확하다고 봤다. 상벌위에서 건설노조원이 "조합 감사도 회계자료를 검토하지 않은 채 감사의견서에 서명했고, 노조가 개인 비리를 감시할 수 없는 체제로 운영됐다"고 진술하는 등 노조가 비리를 눈감아준 정황이 있었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노조가 조합원의 비리를 감시하고 저지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지 못한 채 운영된 이상 노조가 전 위원장의 횡령을 묵인한 것"이라며 "제명결의 사유는 인정된다"고 말했다.

특히 법원은 "제명결의 당시 진 전 위원장은 집행부를 사조직화하고 퇴진을 주장하는 조합원들을 마구잡이로 징계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노조가 비민주적으로 운영됐다는 방증"이라 비판했다. '위원장 개인 일탈'이란 노조의 주장에는 "조합장에 대한 감시가 없고, 비민주적으로 조직이 운영되는 등 노조로써의 운영 실태가 징계사유일 뿐"이라며 "노총의 제명은 진 전 위원장의 일탈을 문제 삼고 있지 않다"고 일축했다.

박시온 기자 ushire90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