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를 잘 푸는 것보다 좋은 문제를 만드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합니다.”
오상록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사진)은 13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최근 유상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취임 후 첫 현장 방문지로 KIST를 선택하면서 KIST와 오 원장의 역할이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유 장관과 발맞춰 한국 과학계의 글로벌 기술 주도권 확보라는 임무를 부여받은 오 원장은 “한국 과학계가 국가 경제 발전의 기틀을 놓고, 인재 양성에 앞장서 온 건 사실이지만 이제는 경제 규모에 맞게 체질을 바꿔야 할 때”라며 “논문 수와 결과 위주의 평가 방식에서 벗어나 무엇을 연구할지 고민하는 수요 조사와 기획에 집중해야 한다”고 입을 열었다.
오 원장이 패러다임 전환을 촉구한 이유는 한국이 세계 시장에서 주요 국가로 우뚝 섰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는 “과거에는 선진국을 따라 하는 ‘패스트 팔로’ 전략이 통했지만, 이제는 한국이 앞서서 발칙한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과감하게 투자하는 ‘퍼스트 무버’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구 결과를 ‘돈’이 되는 산업으로 키우는 데 더 힘써야 한다는 얘기다.
오 원장은 세계 속 한국 과학계의 위상이 과거에 비해 높아졌다고 강조했다. 그는 “옛날엔 국제 학회에 참가한 한국 과학자의 절대적인 수가 적었다”며 “최근엔 각 분야 학술대회의 한국 국적 참여자 수가 국가순으로 최소 10위 안에는 들어간다”고 밝혔다. 로봇 분야에선 5위 안에도 든다는 게 오 원장의 분석이다. 그는 “한국은 국제 과학계에서 굉장히 선호되는 파트너”라며 “한국 과학계의 글로벌화가 많이 진전됐다고 평가한다”고 말했다.
오 원장은 ‘호라이즌 유럽’이 한국 과학의 세계화를 촉진할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호라이즌 유럽은 한국이 글로벌 스탠스를 넓히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할 것”이라며 “미국과 일본만 바라보던 시선을 유럽으로 넓히면 훨씬 많은 연구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기대를 드러냈다. KIST는 국내 유일의 해외 정부출연연구소인 ‘KIST 유럽연구소’를 독일 자를란트주 자르브뤼켄에서 운영하며 한국 과학계의 세계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KIST는 6개 연구 기관이 입주한 자를란트대 연구개발(R&D) 클러스터에 1996년 자리 잡고, 지난 28년간 유럽과의 공동연구 등 국제 협력에 앞장섰다.
오 원장은 한국이 호라이즌 유럽 준회원국이 됐다고 해서 기회가 저절로 주어지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은 막 자격을 얻었을 뿐”이라며 “유럽 연구자와 소통하고, 그들의 문화를 익혀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과학 100년’을 위해선 원천기술과 기초과학을 육성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오 원장은 “한국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는 이유는 단기적 성과에 매몰됐기 때문”이라며 “R&D 투자를 지속해서 늘리고 장기간 연구, 투자를 통해 창의성 확보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