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환자 매일 천 명씩 죽어 나갔으면" 의사 입에서 나올 소린가

입력 2024-09-12 17:46
수정 2024-09-13 06:45
의사와 의대생만 가입할 수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일부 의대생의 막말은 충격적이다. 한 의대생은 “죽음에 대한 공포로 온몸이 마비되고, 의사에게 진료받지 못해 생을 마감할 뻔한 경험들이 여럿 쌓이고 쌓여야 의사에 대한 감사함과 존경심을 갖게 된다”고 했다. 심지어 “2살 아기 사건(응급실을 찾다 의식불명에 빠진 사건)을 봐도 감흥이 떨어진다” “조선인들 죽는 거 볼 때마다 기분이 좋다” “매일 천 명씩 죽어 나갔으면 좋겠다” 등의 글도 이어졌다. 의대 증원에 대한 불만이 담긴 감정적 표현임을 감안해도 이런 패륜적 인식을 가진 이들이 의사가 될 자격이 있는지 심히 의문이다.

의정 갈등이 7개월째 접어들면서 국민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한시가 급한 암 환자와 가족은 수술 지연으로 피를 말리고 있다. 올해 2~6월 전국 상급종합병원에서 암 수술을 받은 환자는 5만7244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6만8425명)보다 16.3% 줄었다. 환자가 ‘응급실 뺑뺑이’를 돌다가 제때 치료받지 못해 숨지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추석 때 아프면 큰일”이라는 국민적 불안도 팽배하다.

이런 상황에 의료계 커뮤니티에선 응급실에서 일하는 전공의 개인정보를 담은 ‘블랙리스트’가 돌기도 했다. 이들을 ‘부역자’로 낙인찍고, “불륜이 의심”, “싸이코 성향”이라는 조롱을 서슴지 않는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어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환자의 생명과 건강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심각한 범죄 행위”라고 규정했다. 한 총리의 말대로 블랙리스트 작성자와 유포자는 끝까지 추적해 처벌해야 한다.

작금의 사태는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정부 책임도 없지 않지만, 기득권에 사로잡혀 증원 철회만을 고집하는 의료계 책임이 크다. 그런데도 일각의 도를 넘은 행태는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고귀한 직업으로서 의사에게 신뢰와 존경을 보내온 국민을 낙담시키고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 실제 환자가 죽어 나가는 건 의사들도 가장 피하고 싶은 일일 것이다. 의료계가 정치권이 제안한 여야의정 협의체에 하루속히 합류해 대화의 물꼬를 트는 게 국민과 환자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이자 파국을 막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