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악의 축' 텔레그램, 탄생은 러시아 탄압 맞선 '자유의 투사'였다[비트코인 A to Z]

입력 2024-09-09 10:10
수정 2024-09-09 10:11


파벨 두로프 텔레그램 최고경영자(CEO)가 8월 28일 프랑스의 공항에서 체포돼 기소됐다는 갑작스러운 소식에 전 세계 IT업계가 시끄러웠습니다. 1984년생으로 오는 10월 만 40세가 되는 두로프는 115억 달러(약 15조3000억원)의 자산으로 포브스 선정 세계 억만장자 리스트에 올라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개인적으로 소유한 자산이 없고, 술을 마시지 않으며, 고기와 커피도 멀리하는 금욕적인 생활을 합니다. 그는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정자 기부를 통해 12개국에 100명이 넘는, 하지만 자신은 알지 못하는 ‘생물학적 자녀’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두로프는 러시아 출신이지만 쫓겨나듯이 러시아를 떠나면서 카리브해의 작은 섬나라 세인트키츠네비스 국적을 취득했고 뒤이어 2017년 UAE 국적을, 2021년엔 프랑스 국적을 각각 갖게 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러시아 IT산업의 역사가 된 두로프
두로프의 창업 경력은 가히 전설적입니다. 그의 현재 타이틀은 텔레그램의 창업자이자 CEO입니다. 월간사용자(MAU) 기준으로 텔레그램은 왓츠앱, 위챗, 페이스북 메신저에 이어 4위이고 지난 7월 다운로드 기준으로는 1위입니다.

하지만 두로프의 첫 창업 성공작은 텔레그램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형 니콜라이와 함께 러시아판 페이스북이라 불리는 프콘탁테(VK)를 만들면서 ‘러시아의 마크 저커버그’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두로프는 떠났지만 지금도 VK는 러시아 SNS 순위에서 부동의 1위입니다.

훗날 두로프는 블록체인 플랫폼인 ‘텔레그램 오픈 네트워크(TON)’도 만들었습니다. 나중에 두로프는 손을 뗐지만 이후 TON에서는 톤코인(toncoin)이라는 암호화폐가 발행됐습니다. TON은 네트워크도 암호화폐도 거래량으로 보면 10위권에 들어갑니다.

지난 10여 년 동안을 풍미했던 ‘소셜’에서 출발해 그와 별도로 시작한 메신저 사업에 이어 완전히 새로운 개념인 블록체인에 이르기까지 성공시킨 창업가는 세계적으로 거의 없습니다. 아직 마흔이 되지 않은 두로프의 비결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의 행적을 보면 두로프 자신이 일관되게 모든 검열에 저항해왔던 것이 여러 이유 중에서 가장 핵심적일 수 있어 보입니다. 대다수 매체가 두로프를 소개할 때 ‘언론의 자유’라는 표현을 빼놓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만큼 탄압과 우여곡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언론 자유의 투사’가 된 이유
6년 전인 2018년 4월 30일 월요일 모스크바에서는 최소 1만2000명이 참가한 반정부 시위가 열렸습니다. 이들은 텔레그램의 상징인 종이비행기를 날리며 “텔레그램 차단 시도 중단하라!” “인터넷에 자유를!” 등의 구호를 외쳤습니다.

러시아 사람이 만들어 많은 러시아 사람들이 이용하던, 나아가 글로벌 서비스로 성장한 텔레그램인데 러시아가 국내 이용을 차단시켰기 때문입니다.

러시아 공안 당국은 오랜 기간 텔레그램 측에 이용자 정보 제공을 요구했지만 텔레그램은 응하지 않고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아예 러시아에서 텔레그램을 쓸 수 없도록 막아버린 겁니다.

시위 선봉에는 푸틴의 정적이자 반대 세력의 구심점이었던 야당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가 서 있었습니다. 2020년 독극물 중독으로 사경을 헤맸고 올해 2월 감옥에서 세상을 떠나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던 바로 그 인물입니다.

당시 두로프는 러시아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2006년 대학 재학 중에 페이스북에서 영감을 얻어 VK를 창업했고 몇 년 걸리지 않아 러시아 SNS 업계를 이미 평정했습니다. 그러자 러시아 공안 당국은 그에게 ‘반정부 성향’의 이용자 및 커뮤니티 정보를 넘기라고 요구했습니다. 두로프는 계속 거부했습니다.

2014년 들어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병합한 러시아에서 압력은 더욱 거칠어졌습니다. VK에 있는 반러시아 및 친우크라이나 시위대에 대한 정보를 내놓고, 그때도 정부 정책을 비판하던 나발니의 VK 계정을 차단시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를 거부하면 남은 선택지는 회사를 퇴사하고 조국 러시아를 떠나는 것뿐이었습니다. 두로프는 떠났고 VK는 매각됐습니다. ‘언론 자유’라는 동전의 뒷면 다만 두로프에게는 아직 텔레그램이 있었습니다. 정부로부터 강하게 압박받던 2011년 군인들이 자신의 아파트에 나타난 것을 보고 충격을 받은 두로프는 보안성이 좋은 메신저의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그 결과가 2013년 출시된 텔레그램이었습니다. 러시아가 5년 뒤 텔레그램마저 차단시키자 2018년 모스크바에서 ‘텔레그램 차단 반대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두로프는 시위대에 “여러분과 같은 나라에서 태어난 것이 자랑스럽다”고 감사 인사를 보냈습니다.

사실 텔레그램은 러시아 외에도 세계 곳곳의 핍박받는 운동가들로부터 환영받았습니다. 암호화 기능과 자동 삭제, 추적이 어려운 ‘비밀 대화’ 등 보안성을 앞세운 덕에 누군가의 추적을 꺼리는 이들에겐 텔레그램이 정말 유용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2015년 이후 31개국 정부가 영구적 또는 일시적으로 텔레그램을 차단시켰을 정도로 정부로서는 텔레그램이 마뜩잖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에서 논란이 됐던 각종 사건 수사에서 카카오톡이 증거가 됐다는 얘기가 나올 때마다 정치권과 언론, 재계를 중심으로 텔레그램 이용자들이 단계적으로 확산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물론 폐단도 많습니다. 텔레그램은 이용자에 대해 수집하는 정보를 최소화하고 대화 내용의 보존 또는 삭제 권한을 이용자에게 일임합니다. 이용자 프라이버시에 대한 존중이지만 n번방 사건이나 최근 딥페이크 사건에서 보듯이 이런 환경은 범죄에 악용되기 십상입니다. 이번에 두로프를 체포한 프랑스 반부패 당국도 텔레그램 내에서 이뤄지는 어린이 성학대, 마약 거래, 자금세탁 등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고 사법 당국과 협의하지 않았다는 혐의를 적용했습니다. 러시아가 두로프를 보호한다? 러시아는 2021년부터 텔레그램 차단을 해제했고 텔레그램은 여전히 러시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국민 메신저’입니다. 러시아에서는 두로프가 프랑스에서 입을 열었다가는 군부의 통신 내역이 적국에 고스란히 넘어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옵니다. 그래서일까요. 두로프를 쫓아낸 러시아 정부가 어이없게도 두로프의 석방을 요구하는 진풍경도 빚어집니다.

두로프는 출국금지 명령과 500만 유로 보석금에 풀려났지만 앞으로 길면 몇 년 동안 프랑스 당국의 조사를 받게 됩니다. 아마도 그들은 2018년 러시아 당국이 그랬듯이 두로프에게 텔레그램 암호화 해제 방식을 내놓으라고 요구할 것으로 보입니다. 과연 이번엔 그가 협조할까요? 두로프는 “테러 같은 나쁜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우리의 두려움보다 프라이버시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는 걸 되새겨봅니다.

김외현 비인크립토 한국·일본 리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