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상은의 워싱턴나우입니다. 카멀라 해리스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의 기세가 등등합니다. 주요 경합주에서도 거의 동률이거나 앞서고 있다고 하는데요. 미국 시간으로 목요일 저녁에 대선 후보가 된 후 처음으로 언론 인터뷰를 해서 공개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프랙킹'이라는 게 이슈가 되었는데요. 해리스가 프랙킹에 대한 입장을 바꿨다고 해서 공화당이 공격 포인트로 삼고 있습니다. 근데 프랙킹이 뭘까요? 오늘은 이 얘기를 한 번 해 보려고 합니다.
미국은 세계 최대 산유국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아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깜짝 놀라는 분들이 더 많으실 것 같습니다. 미국이 공식적으로 세계 최대 산유국이 된 지는 벌써 한참 됐습니다. 2018년부터 공식적으로 세계 1위 산유국(원유생산 기준, 오른쪽 그래프)입니다. 산유국=중동이라는 공식이 깨진 지도 오래입니다.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 생산량은 지금 거의 비슷하고요, 지난해 석유(원유+천연가스 등 석유 전반) 생산을 기준으로 보면 러시아 + 사우디가 미국과 비슷합니다(왼쪽 그래프). 미국은 석유(petroleum)와 천연가스를 일 2000만배럴 이상, 원유(crude oil)는 일 1300만배럴 이상 뽑아내고 있습니다.
미국이 산유국이 된 비결은 셰일가스입니다. 셰일 퇴적층에 들어 있는 탄화수소, 결국 화석연료입니다. 문제는 이게 중동처럼 고여 있지 않고 흩어져 있기 때문에 뽑아쓰기가 힘들다는 것인데요, 2010년대 들어 수압파쇄법이라는 기술이 개발되면서 돈되는 자원이 됐습니다. 이 수압파쇄법이 프랙킹입니다. 드릴로 땅을 파서 셰일층까지 파이프를 보낸 다음, 물하고 모래와 화학약품을 섞어서 강하게 쏘면 갇혀 있는 석유와 가스가 흘러나오는데 그걸 끌어올려서 정제하는 겁니다. 뚜껑만 열면 석유가 쏟아지는 중동하곤 다르죠. 이건 힘이 많이 듭니다. 돈도 많이 듭니다. 그러나 텍사스와 뉴멕시코를 중심으로 셰일 생산이 급증하면서 미국은 순식간에 엄청난 산유국이 됐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미국이 석유를 조금 수입하기는 합니다만, 수입하는 양은 2005년 경에 비해서 절반 수준에 불과합니다. 특히 OPEC으로부터의 수입은 줄었고 캐나다에서 수입하는 비중이 늘었습니다.
그런데 땅 파서 석유 펑펑 나오면 좋을 것 같죠? 하지만 미국 셰일오일과 가스 생산업체들의 사정은 그리 편치만은 않았습니다. 일단 생산단가가 높아서, 셰일이 돈이 되려면 유가가 높아야 됩니다. 배럴당 50불은 넘어야 한다는 게 통념인데 이것도 사실 기술개발이 많이 되면 좀 더 떨어질 순 있지만 뚜껑 열면 나오는 중동은 배럴당 몇불이기 때문에 비교가 안 됩니다. 2010년대 들어서 셰일 채굴산업이 각광을 받으면서 투자가 많이 됐는데요, 그러다보니까 공급과잉이 됐습니다. 유가 그래프를 보시면, 유가가 급락한 구간은 셰일업계에는 그야말로 유혈이 낭자한 자리입니다.
2020년 무렵에는 비관론이 극에 달했습니다. 2010년부터 2020년까지 업계 전체가 '태운' 돈은 총 3400억달러에 달합니다. 돈 못 벌고 그냥 투자만 한 겁니다. 그랬는데 유가가 올라오질 않아서 2015~2020년에는 230개사가 지급불능으로 법정관리를 신청했습니다. 다 망한 것은 아니고 지금 살아있는 업체도 있습니다만 소형업체들은 많이 망했습니다.
이처럼 셰일 채굴이라는 것은 어려움이 많습니다. 유가가 받쳐줘야 하고요, 일단 파기 시작하면 계속 빨대를 꽂을 수가 없고 주변 압력이 내려가면 생산성이 급격히 저하됩니다. 돈 많이 들여서 팠는데 생산량이 줄면, 새로운 유정을 또 파야 합니다. 또 돈이 많이 들고요. 번거로운 기술임이 분명합니다.
환경파괴 이슈도 엄청납니다. 이걸 위해서 쓰는 물, 화학약품의 양도 대단하지만 지하수를 대거 오염시키고 지하수 전반이 오염되면 그 위에서 자라는 농작물이나 생태계도 모두 영향을 받습니다. 주변 주민들의 건강도 해친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좋을 거 같진 않죠. 최근에는 생산성 향상으로 단가가 10%, 20%씩 떨어졌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만, 쉽게 옛날처럼 덤벼들지 못하는 분위기가 분명히 있습니다.
2020년의 이런 흉흉한 분위기 속에서 당선된 바이든 대통령은 프랙킹에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금지시키려 한다는 보도도 많은데 본인은 '금지'라곤 안했고, '공공용지에서' 새로운 채굴 허가를 내주지 말자고 했다는데요. CNN의 팩트체크에 따르면 금지(ban)를 명시적으로 주장하진 않았으나 그가 프랙킹에 반대했다는 것은 맞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바이든 정부가 프랙킹을 금지했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금지하려면 관련 법이 의회에서 통과돼야 하는데요. 바이든이 금지법안을 추진하지도 않았지만(못했지만) 의회에서 각 지역 의원들이 반대했기 때문에 씨도 안 먹혔습니다. 바이든 정부에서 프랙킹은 금지된 적 없습니다. 하지만 청정에너지로의 전환, 전기차 보조금 지급 등을 내세우는 분위기 속에서 셰일이 그리 환영받지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면 바이든의 부통령, 해리스는 지금 입장이 뭘까요? 놀랍게도 "금지하지 않겠다" 입니다. 이것은 해리스의 진짜 생각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선거 국면에서 표 떨어지는 소리를 할 수는 없어서, 트럼프에 지지 않으려고 타협한 걸로 보입니다. 그러면서도 "내 가치관이 변한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는데 사실 와닿는 말은 아닙니다. 반면에 트럼프 전 대통령은 명백하죠. 석유를 더 많이 캐서, 물가를 낮추겠다. 청정에너지는 비싸고, 기후위기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차기 정부가 누가 되든간에 산유국으로서의 미국은 몇 가지 딜레마를 갖고 있습니다. 첫째는 기후위기 대응이냐 물가 대응이냐의 딜레마입니다. 장기적으로는 기후위기 대응이 필요합니다만, 고물가 고통이 워낙 크다보니 '석유를 캐서 싼 에너지를 쓰자'는 트럼프의 대책이 솔깃하게 들립니다.
둘째는 셰일오일과 가스 생산을 통해 견제해 온 OPEC과 러시아에 대한 대응력 문제입니다. 이전에는 OPEC은 물론, 러시아까지 포함한 OPEC+가 감산! 그러면 유가가 올라갔습니다. 지금은 안 그렇죠. 셰일오일과 가스가 본격 생산된 2010년대 들어서는 유가에 상단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유가가 많이 오르면 셰일 생산이 늘어날 테니까요. 미국이 스스로 유가 통제권을 갖게 되었는데, 프랙킹을 금지하면 이런 통제권도 스스로 놓게 됩니다.
셋째는 셰일산업 자체에 대한 불명확한 시그널입니다. 정부 정책이 오락가락하면서 셰일업계는 스스로 방어적인 태도로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유가가 올라도, 생산성이 향상돼도 예전처럼 쉽게 생산량을 늘리지 않고 있습니다. 해리스 후보가 "금지하지 않겠다"는 말도 아마 별로 믿지는 않을 듯 합니다.
지난 29일 저녁 CNN과의 첫 인터뷰는 이것 외에도 많은 논의가 있었습니다. 해리스는 '기회경제'라는 개념을 들고 나와서 중산층을 살리겠다고 했고, 이제 와서 흑인인 척 한다는 트럼프의 주장에 관한 의견을 묻자 "오래되고 지루한 각본"이라며 "다음 질문 받겠다"고 쿨하게 넘겼습니다. 바이든이 자신을 즉각 지지하겠다는 의사가 명백했다며 바이든과의 갈등설을 차단했습니다. 당선되면 공화당 인사를 내각에 기용하겠다는 탕평책도 내놨습니다.
하지만 중산층 살리겠다는 메시지가 강렬하지 못했습니다. 국경문제 대응과 같은 부분에서도 법적대응을 강조하기만 했을 뿐, 자신의 생각이 어떻고 어떻게 하겠다는 게 분명치 않았습니다. 그럭저럭 선방했다는 평가도 많습니다만, 전체적인 인상은 녹화방송인데도 수세적인 느낌이었달까요.
뉴욕타임스가 집계한 양측 경합주 지지율을 살펴보면, 조지아주에서 양측의 지지율이 좁혀진 것이 눈에 띕니다. 해리스-월즈 후보가 버스투어 한 것이 효과가 있었을까요? 공화당이 우세한 것으로 알려졌던 선벨트까지 해리스가 치고 나가면서 정말 대선 결과가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혼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대중의 관심은 오는 10일 토론에 쏠리고 있습니다. 한국시간으로 11일 오전 10시부터 시작하는데요. 인터뷰와 토론에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 해리스가 과연 잘 방어할 것인지가 관전 포인트이고 트럼프가 종전의 취약점을 얼마나 극복할지가 또 다른 관전거리입니다. 트럼프는 기존의 이미지가 소진되어가고 있습니다. 밴스가 해리스보고 지옥에 갈 거라면서 독설을 거듭하면서 트럼프의 좁은 지지층 이미지를 강화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고요. 트럼프가 피격 직후에 보였던 것처럼 좀 더 확장성 있는 태도를 보인다면 훨씬 도움이 될 것 같은데요. 저도 너무 기다려집니다.
다음 주 주요일정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고용보고서입니다.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기다리는 바로 그 보고서입니다. 실업률이 4.3% 수준으로 나올 것으로 시장은 예상하고 있는데, 그 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이달 중순 FOMC에서 금리 인하가 순조롭겠죠. 아주 튀는 수치가 나올 가능성이 높진 않습니다만, 혹시라도 그렇다면 파월 의장으로선 스텝이 조금 꼬일 수도 있고요.
이번 주 실적발표 기업 중에서는 통신용 반도체 기업 브로드컴(9월5일)이 가장 눈에 띕니다. 4일 발표되는 HP엔터프라이즈와 딕스 스포츠용품점도 관심 기업입니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