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준의 인문학과 경제] 피렌체 가족기업 페라가모, 韓서도 가능한가

입력 2024-08-25 17:06
수정 2024-08-26 00:09
올여름도 예년처럼 많은 한국인이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유럽에 다녀온 이들도 제법 많을 것이다. 그중 일부는 이탈리아 피렌체에 들렀을 것이다. 두오모 대성당 등 명소를 둘러봤을 것이다. 유럽 명품을 사랑하는 한국 소비자답게 페라가모 본점에 들어가 보거나, 적어도 그 앞에서 사진이라도 찍고 왔을 법하다.

피렌체의 명물 페라가모는 살바토레 페라가모(Salvatore Ferragamo)가 세운 가족 기업이다. 아르노강 남쪽에서 산타트리니타 다리를 건너면 오른편에 서 있는 웅장한 석조건물이 보인다. 건물의 이름은 ‘팔라초 스피니 페로니’. 페라가모 본사와 박물관, 부티크가 들어서 있다. 처음 지어진 것은 13세기 말이며 17세기에 손을 봐 지금의 근사한 모습을 갖췄다. 이 역사적인 건물을 페라가모가 접수했으나 정작 기업을 세운 이는 피렌체 출신이 아니라 이탈리아 남부 캄파냐 시골에서 태어났다.

르네상스 명물 도시 피렌체는 외지인에게 배타적이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피렌체에 페라가모가 곧장 진출할 수는 없었다. 그는 고향 지방에서 구두 만드는 솜씨를 배운 뒤 친형 중 한 명이 이민 가 있던 미국으로 간다. 그는 보스턴을 거쳐 캘리포니아에 정착해 할리우드 배우들의 신발을 제작해주는 장인으로 성공한다. 페라가모는 1927년 이탈리아로 돌아와 동향 출신 여성과 결혼한다. 그가 신혼살림을 차린 도시는 피렌체였다. 피렌체를 본거지로 삼은 그는 ‘살바토레 페라가모’ 상표를 등록하고 본격적으로 사업에 나선다. 그의 사업은 1950년대 기준, 700여 명의 장인을 고용해 매일 고급 수제화 350켤레를 만들어내는 세계 굴지의 업체로 성장한다.

페라가모는 1960년 62세의 나이로 죽었다. 시골 흙수저 출신 페라가모가 일군 비즈니스와 브랜드 가치는 그의 부인과 여섯 명의 자녀가 이어갔다. 현재도 페라가모는 가족 기업이다. 창업자 살바토레의 부인은 2018년 사망했으나, 여섯 명의 자녀가 페라가모의 세계적 명성을 지켜내고 있다. 페라가모 가족 기업 스토리는 다른 이탈리아 명품 기업들에도 있다. 창업자 맥을 잇는 가족들이 글로벌 브랜드로 키워낸 사례가 적지 않다.

반면 대한민국에서는 페라가모 같은 가족 기업이 대대로 사업을 발전시키기 쉽지 않을 듯하다. 자수성가한 창업자가 자신의 사랑과 땀이 묻어 있는 사업체를 생전에 아들 또는 딸에게 물려주거나 사업체를 경영하다가 사망하면 국가는 거액의 세금을 뜯어갈 것이다. 시민 단체들과 일부 언론은 ‘족벌경영’ ‘아빠 찬스’ 등을 들먹이며 비난할 것이다. 변호사들은 피상속자들에게 달라붙어 유산 배분 소송을 제기하도록 부추길 것이다. 페라가모가 한국 사람이었다면 아마도 그가 죽은 뒤 부인과 자식들은 서로 법정에서 다투거나 거액의 상속세를 마련하기 위해 기업을 중국 자본에 팔아넘겼을 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