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 입국한 '계절근로자'…"불법체류 양산 통로"

입력 2024-08-20 17:42
수정 2024-08-28 15:44
“그제도 윗집에서 계절근로자 제도로 일하던 외국인 한 명이 야반도주한 게 발견돼 동네가 난리 났었어요.”

강원 양구에서 외국인 계절근로자를 고용해 토마토 농장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20일 한국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도로 쪽을 비추는 CCTV에 이 근로자가 한 승합차에 올라타는 모습이 찍혔지만 아직도 행방은 모른다”며 이렇게 말했다.


정부는 2017년 농가를 지원하기 위해 외국인 계절근로자 제도(E-8 비자)를 도입했다. 일손이 부족한 농번기에 외국 인력을 짧게는 5개월에서 길게는 8개월까지 고용하는 제도다. 2022년 1만2027명이던 계절근로자는 작년 1만8050명, 올해 3만9411명으로 늘었다.

문제는 계절근로자들이 사업장을 이탈해 불법체류자가 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2022년 무단이탈한 계절근로자는 1151명으로 전체의 9.6%에 달했다. 지난해에도 925명이 이탈한 것으로 밝혀졌다.

기본적으로 계절근로자의 고용 계약 기간이 너무 짧고 제조업 등 다른 업종보다 임금이 낮은 점이 무단이탈의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어렵게 한국에 들어온 계절근로자로선 불법체류를 해서라도 돈을 더 벌겠다는 유혹을 뿌리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선발 시험을 거치는 고용허가제(E-9)보다 문턱이 낮아 브로커가 개입할 여지도 크다. 처음부터 브로커와 짜고 일단 계절근로자로 입국한 후 무단이탈하는 일이 종종 벌어지는 이유다.

이럴수록 계절근로자 관리 시스템을 더 촘촘히 짜야 하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법무부 배정심사협의회가 지방자치단체당 계절근로자 수를 배정하면 지자체장이 직접 외국 지자체와 양해각서(MOU)를 맺고 계절근로자를 들여온다. 국가가 인력을 선발하고 입출국까지 관리하는 고용허가제보다 적정 인력을 감별하고 확보·관리할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감사원에 따르면 농업 부족 인력은 작년 4만4000여 명에서 2032년 16만5000여 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만큼 계절근로자 유입도 갈수록 늘어나는 게 불가피하다. 운영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계절근로자 제도가 불법체류자 양산 통로로 악용될 소지가 크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계절근로자 제도를 다른 고용 제도와 연계해 보다 유연하게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곽용희/원종환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