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내달 10일 처음으로 공개 토론에서 맞붙는다. 두 사람이 직접 대면 토론을 벌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달 21일 조 바이든 대통령의 후보 사퇴 이후 해리스 부통령 지지율이 계속 상승세를 타자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은 초조한 기색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내달 3번 토론” 제안미국 방송사 ABC뉴스는 8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를 통해 내달 10일 트럼프 전 대통령과 해리스 부통령이 이 방송사 주최 공개 토론에 참여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9월 10일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트럼프 전 대통령과 두 번째 TV 토론을 하기로 했던 날이다. 앞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보수 성향 방송사인 폭스뉴스와 9월4일에 TV 토론을 하겠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해서 해리스 부통령과 신경전을 벌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자택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9월10일 토론에 동의했다면서 ABC뉴스 토론 외에 9월 4일 폭스뉴스, 9월 25일 NBC뉴스 주관 토론도 제안했다. 그가 더 많은 토론을 제안한 것은 최근 해리스 부통령의 언론 점유율과 지지율이 급격히 올라간 데 따른 조급한 마음이 드러난 것이라는 게 현지 언론들의 분석이다. CNN방송에 따르면 해리스 부통령은 폭스뉴스 주최 토론회는 참석하지 않겠다고 했고 NBC 방송은 검토해 보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반면 해리스 부통령은 대선주자가 된 후 2주 넘게 인터뷰 요청을 거절하고 질문에도 답하지 않으며 미디어와의 접촉을 피하고 있다. 민주당 대선 캠페인을 이끌고 있는 데이비드 액설로드는 뉴욕타임스에 “적절한 타이밍을 노리는 전략”이라고 주장했지만, 폭스뉴스는 “질문받기를 회피하는 해리스”라고 비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 수위도 좀 더 과격해지고 있다. 그는 해리스와 월즈로 후보가 교체됐지만 공화당의 전략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며 해리스 부통령이 “(과거 검사시절) 샌프란시스코와 캘리포니아를 파괴했다”고 주장했다. 또 “그녀는 바이든보다 더 나쁘다”며 3차 세계대전 가능성을 거론하고, “월가의 뛰어난 사람들이 트럼프가 승리하지 않으면 경제공황이 올 것이라고 하는데 나는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자신이 당선되면 “대통령이 최소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발언권을 가져야 한다”며 “많은 경우 나는 미국 중앙은행(Fed) 사람들이나 Fed 의장보다 더 나은 직감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존중하지 않는 발언이다. ○해리스 우위 경합주 늘어
해리스 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지난 2주 내내 줄곧 상승세다. 팀 월즈 부통령 후보를 지명한 지난 6일부터는 월즈에 대한 호감 이미지까지 겹쳐 온라인을 중심으로 지지층이 결집하고 있다.
다수의 여론조사 결과에서 해리스 부통령은 우위를 점하고 있다. 여론조사 기관 입소스가 지난 2~7일 2045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해리스 부통령 지지율은 42%로 트럼프 전 대통령(37%)을 5%포인트 차로 따돌렸다. 지난달 23~24일 같은 조사에서는 두 후보가 각각 37%와 34%를 기록했던 것에 비해 격차가 벌어졌다.
선거전문 조사업체인 쿡 폴리티컬 리포트는 이날부터 남부 ‘선벨트’에 해당하는 애리조나·네바다·조지아주를 ‘공화당 우세’ 대신 ‘경합’ 지역으로 분류한다고 밝혔다. 네바다에서 진행된 최근 조사에서 해리스는 2%포인트 앞섰다. 애리조나와 조지아에선 오차범위 내 경쟁 중이다. 전통적으로 민주당이 조금 더 강세였던 미시간,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에서 해리스 부통령은 소폭(0.7~1.6%포인트) 우위로 분석된다.
에이미 월터 쿡 폴리티컬 리포트 편집장은 “공화당이 잠재적으로 확보한 선거인단은 235명, 민주당은 226명이다. 나머지 77명의 향방에 따라 차기 선거 결과가 달라지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미시간 주가 경합상태에 있는 것은 올해 대선이 그만큼 더 치열하다는 뜻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선거규칙 바꾼 조지아
트럼프 전 대통령은 꾸준히 대선결과에 승복하지 않을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모든 상황이 조작되고 있으며, 미디어도 민주당에만 우호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마틴루터킹 집회 참가자보다도 우리 연설에 지지자가 훨씬 많이 모이고 있다”며 언론이 민주당 참가자는 많이, 공화당 참가자는 적게 보도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가 원하는 것은 정직한 선거가 전부”라며 ‘정직한 선거’가 치러진다면 펜실베이니아와 조지아 등에서 자신이 이길 것이라고 장담했다.
공화당 지지자들이 다수로 구성된 조지아주 선거관리위원회는 최근 선거결과에 대해 ‘합리적인 문제제기’를 허용하는 것으로 선거 규칙을 바꾸는 방안을 통과시켰다. 워싱턴포스트는 ‘합리적인 문제제기’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각 선거관리위원회가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고, 조사 시간에 제한을 두지 않아 선거결과 공표를 막거나 지연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선거 불복의 빌미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