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5대 시중은행의 달러예금 잔액이 한 달 만에 8% 넘게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원·달러 환율이 1380원대 안팎으로 유지됐지만 중동 분쟁이 확전 양상을 보이면서 안전자산 수요가 증가한 결과로 풀이된다. 지난달 하순부터 미국 경제 침체 우려까지 커져 안전자산인 달러 수요는 더욱 늘어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등 5대 은행의 달러예금 잔액은 지난달 말 기준 575억6700만달러로 집계됐다. 6월 말(531억1900만달러)과 비교해 한 달 만에 44억4800만달러(8.4%) 늘었다.
5대 은행의 달러예금 잔액은 작년 11월 말까지만 해도 635억1100만달러에 달했지만, 작년 12월부터 올해 5월까지 6개월 연속 전월 대비 감소했다. 달러 가치가 올 상반기 급격히 올라 환차익 실현 매물이 일부 시장에 풀린 데다 국내 기업의 해외 배당까지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러다 6월 달러예금 잔액이 전월 대비 0.2% 늘었고, 7월에 증가 폭을 더 키웠다.
지난달 달러예금 잔액이 큰 폭으로 늘어난 데 대해 환차익을 기대한 투자 수요보다는 안전자산 확보 목적의 수요가 많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달 원·달러 환율이 1390원에 이를 정도로 높은 수준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지난달 3일엔 원·달러 환율이 1390원60전(오후 3시30분 기준)에 달했고, 지난달 마지막 외환시장 거래일인 30일엔 1385원30전에 거래를 마쳤다.
대신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불안이 커지고 미국의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진 점이 달러 수요 증가를 이끌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이스라엘은 7월 20일 후티 반군을 공격하기 위해 예멘 본토를 공습했다. 이스라엘은 같은 달 31일 앙숙인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 미사일을 발사해 하마스 최고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를 살해하기도 했다. 박수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중동 리스크가 확산하면 안전자산에 속하는 통화 가치가 절상 압력을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달러와 달리 엔화예금은 감소세로 전환했다. 5대 은행의 7월 말 엔화예금 잔액은 1조2111억엔으로 전월 말(1조2929억엔)보다 818억엔(6.3%) 감소했다. 5대 은행의 엔화예금 잔액이 전월 대비 줄어든 것은 작년 12월(-640억엔) 이후 7개월 만에 처음이다.
올 들어 6월까지 줄곧 늘어나던 엔화예금 잔액이 한 달 만에 6%나 줄어든 원인으로는 엔화 가치 상승으로 인한 환차익 실현 매물이 쏟아진 점이 꼽힌다. 원·엔 재정환율(오후 3시30분 기준)은 1월 2일 100엔당 919원69전에서 7월 11일 852원72전까지 하락했다가 7월 25일 906원41전으로 2주 만에 50원 넘게 올랐다. 이달 5일엔 963원20전으로 직전 거래일인 지난 2일(919원93전)보다 43원27전 급등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