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말 일본은행(총재 우에다 가즈오·사진)의 기준금리 결정을 앞두고 일본 정부·여당 주요 인사가 잇달아 ‘금리를 올려야 한다’며 압박하고 나섰다. 더는 엔화 가치가 떨어지는 일을 두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통화정책 독립성을 지닌 중앙은행을 향한 이례적 요구다. 그러나 실질임금이 감소하는 가운데 개인소비도 부진해 일본은행이 딜레마에 빠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리 올려 엔저 바로잡아야”23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집권 자민당 2인자인 모테기 도시미쓰 간사장은 전날 도쿄에서 열린 한 강연에서 일본은행에 대해 “단계적 금리 인상 검토를 포함해 통화정책 정상화 방침을 보다 명확하게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도한 엔화 약세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급격한 엔저가 발생하는 것은 일본 금리가 미국보다 훨씬 낮기 때문이라는 인식이다.
정치적 독립성을 지닌 일본은행에 자민당 집행부가 공개석상에서 대응을 주문한 것은 이례적이다. 모테기 간사장은 “과도한 엔저는 일본 경제에 마이너스가 분명하다”며 엔저로 물가 상승이 장기화하는 시나리오에 위기감을 드러냈다. 그는 통화 긴축에 대해 “일본 기업이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일본 정부도 비슷한 인식을 조심스레 나타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최근 게이단렌 하계 포럼에서 “통화정책 정상화가 경제 스테이지 전환을 촉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노 다로 디지털상은 블룸버그통신 인터뷰에서 “일본은행은 정책금리를 인상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가 이틀 뒤 “통화정책은 일본은행이 결정할 일”이라며 한발 물러서기도 했다.
물가는 27개월 연속 2% 웃돌아일본은행은 오는 30일과 31일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연다. 우선 지난 6월 회의에서 결정한 국채 매입 축소와 관련해 구체적인 감액 규모를 밝힐 계획이다. 일본은행은 3월 기준금리를 연 -0.1%에서 연 0~0.1%로 인상했지만 완화적 통화 기조를 유지하며 매월 6조엔 안팎의 국채를 계속 매입했다.
관건은 추가 금리 인상 여부다. 물가 상승률은 목표치인 2%를 웃돌고 있다. 6월 소비자물가지수(CPI·신선식품 제외)는 전년 동월 대비 2.6% 상승하며 27개월 연속 2%를 웃돌았다. 엔저가 수입품 가격을 끌어올린 데다 기업이 원자재비, 인건비 상승분을 가격에 전가하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일본은행은 이달 회의 후 ‘경제·물가 전망 보고서’를 발표한다. 일본은행은 금리를 추가로 인상할지 판단할 때 기조적인 물가 상승률을 가장 중요하게 보고 있다. 핵심은 기대인플레이션율이다. 지난달 일본은행 조사에서 기업의 물가 전망은 3년 후 2.3%, 5년 후 2.2%로 3월 조사 때보다 각각 0.1%포인트 뛰었다. 역대 최장기간 실질임금 감소문제는 가계다. 내각부는 6월 경제보고에서 개인소비에 대해 “회복세에 제동이 걸렸다”며 5월의 판단을 유지했다. 재무부도 “(개인소비) 힘이 부족하다”고 인식한다. 5월 소매판매는 전년 동월 대비 3% 증가하며 호조세를 보였지만 내국인 소비보다 외국인 관광객이 늘어난 효과다. 일본은행의 실질 소비활동지수는 2023년 8월 이후 하락세다. 총무성의 5월 가계 조사에서도 2인 이상 가구의 실질 소비지출이 전년 동월보다 1.8% 줄었다.
실질임금 감소가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후생노동성의 5월 근로통계 조사에 따르면 5인 이상 사업체 근로자 1인당 월평균 급여는 29만7151엔으로 전년 동월보다 1.9% 증가했다. 그러나 물가 상승분을 반영한 실질임금은 오히려 1.4% 줄었다. 이로써 실질임금은 26개월째 감소세를 보였다. 후생노동성은 “임금 인상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지만 물가 급등 영향이 강해 실질임금 하락세가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올해 춘계 노사협상 결과 일본 기업은 임금을 평균 5.1% 올리기로 했다. 인상률은 1991년 이후 33년 만에 5%를 넘어섰다. 그러나 실제 임금에 반영되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니혼게이자이는 “정부 내에서 금융 정상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실질임금은 마이너스를 지속하고 있고 소비도 부진하다”며 “일본은행은 딜레마에 빠진 채 7월 회의를 맞는다”고 분석했다.
도쿄=김일규 특파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