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마약성분인데…검사하면 음성, 액상 전자담배로 둔갑한 '합성대마'

입력 2024-07-23 17:53
수정 2024-07-31 16:20

“유명 R사, J사 전자담배 기기와 액상 대마(사진)를 함께 팝니다.”

23일 구글 검색을 통해 접속한 ‘XX약국’ 텔레그램 방에서는 이와 같은 글이 게시되며 불법 거래가 이뤄지고 있었다. 운영자 A씨에게 개인 메시지를 통해 구매를 문의하자, 그는 액상 대마를 일컫는 ‘떨액’, 합성 대마인 ‘브액’을 전자담배 기기에 결합해 흡입하는 방법을 상세히 안내했다. 가격은 ‘1팟’(1.0~1.4mL)에 17만~20만원 선이었다. 그는 10여 종류의 수십 개 액상 통이 담긴 ‘인증 샷’도 전송했다.

최근 액상형 전자담배에 신종 마약을 섞어 유통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따르면 국내에 유통된 신종 마약은 2020년 3종, 2021년 6종, 2022년 7종, 2023년 10종 등으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경찰은 새로운 마약을 적발할 때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를 통해 마약으로 지정하는 절차를 거친다.

문제는 신종·변종 마약 유통 속도를 단속 당국이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기존 마약 구조를 변형한 신종 마약은 적발되더라도 마약 간이 검사 시 당장 음성 반응이 나오는 특성이 있어 경찰도 수사에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 판매자 B씨는 “C마약은 해외에서 개발된 신종 마약으로 검사에서 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액상형 전자담배는 합성 니코틴 액을 사용하지만, 니코틴 대신 액상 마약을 첨가하거나 아예 끼워 유통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일반 담배와 달리 액상형 전자담배는 상대적으로 규제가 느슨해 온라인에서 대담하게 사업을 확장하는 판매상도 많다. 신종 마약과 전자담배를 한 세트로 묶어 예쁘게 포장한 뒤 정상 제품처럼 택배로 거래하는 식이다.

전문가들은 액상형 전자담배를 통한 마약 유통이 10대들에게도 쉽게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는 “신종 마약을 전자담배 액상에 탄 뒤 몰래 권하는 범죄가 늘고 있다”며 “10대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액상형 전자담배가 마약 범죄로 번지고, 성폭행 등 다른 범죄를 부추긴다”고 경고했다.

정부의 액상 담배에 대한 미온적 규제가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지적도 나온다. 21대 국회에서 합성 니코틴 담배를 규제하는 법이 발의됐지만, 기획재정부는 ‘합성 니코틴을 권장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반대 의견을 낸 바 있다. 이성규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장은 “시대 변화에 따라 다양한 담배가 나타나는 만큼 모두 법 테두리 안에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조철오/김다빈 기자 che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