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혁신 빠진 '반쪽짜리' 가상자산법

입력 2024-07-18 16:59
수정 2024-07-19 00:37
“가상자산이 등장한 지 10년이 됐는데 제 삶에서 느낄 수 있는 구체적인 사례가 없습니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사무처장은 지난 17일 한 블록체인 관련 행사에서 “업계에 계신 분들이 뼈아프게 느껴야 하는 부분”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이 행사에는 국내 암호화폐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의 이석우 대표와 이재원 빗썸 대표, 차명훈 코인원 대표, 오세진 코빗 대표 등이 참석했다.

업계 대표들 면전에서 나온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의 강경한 발언은 틀린 것이 없다. 국내 가상자산산업에서는 ‘코인 투자’가 전부로 인식되고 있다. 암호화폐거래소 시장의 독과점도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일부 거래소는 한때 영업이익률이 80%에 달했다. 거래소가 이익을 낼수록 이용자에게 어떤 가치가 환원되는지, 설비투자와 연구개발(R&D) 등 국가 경제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업계 탓만 할 수도 없다. 가상자산 시장의 혁신과 발전, 독과점 해소를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서다. 금융당국의 가상자산을 바라보는 시각 역시 10년 전과 비슷하다. 19일 시행에 들어가는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만 봐도 알 수 있다. 가상자산 투자자의 예치금(현금)은 의무적으로 보호되지만, 암호화폐는 보호 대상에서 빠져 있는 게 대표적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암호화폐는 투자 자산이 아니다”고 못 박았다. 2018년 “암호화폐 거래는 도박과 같다”며 국내 암호화폐 시장의 대폭락을 부른 박상기 당시 법무부 장관의 발언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가상자산에 대한 정부 입장이 그대로이다 보니 한국은 세계적인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가 거래되고 있지만, 국내에선 아직도 상장과 투자가 막혀 있다. 전문적인 투자가 가능한 법인의 가상자산 직접 투자도 금지하면서 코인 시장은 개인들의 투기판으로 방치된 지 오래다. 거래소의 독과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복수 은행제 도입 등이 시급하지만 금융당국은 외면하고 있다.

최근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친(親) 암호화폐론자인 JD 밴스 미 연방 상원의원을 부통령 후보로 지목했다. 그는 비트코인에 직접 투자하고, 가상시장 친화적인 법안을 제출한 인물이다. 미국 가상자산 시장은 밴스 의원이 “업계에 ‘꿈의 티켓’과 같다”며 기대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으로 가상자산이 제도권으로 들어온 만큼 정부도 가상자산 시장의 진흥과 육성 등 생태계 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업계에만 맡겨둔다고 될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