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치(官治) 금리’ 덕분에 시중은행이 뒤에서 웃는 역설적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작년부터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인위적으로 끌어내린 금융당국이 최근 가계 빚 우려가 커지자 은행에 금리를 다시 올리라고 압박하면서다. 은행마다 이달 들어서만 서너 차례 주담대 금리를 올렸다. 시장금리 하락에도 당국이 대출금리 인상을 유도하는 탓에 은행권의 이자 이익만 늘어날 판이다.
국민은행은 18일부터 주담대와 전세자금대출 금리를 0.20%포인트 인상한다고 17일 발표했다. 지난 3일(주담대 0.13%포인트)과 11일(주담대·전세대출 0.10~0.20%포인트)에 이어 이달에만 세 번째 가계대출 금리 인상이다. 신한은행은 15일에 이어 오는 22일부터 은행채 3년·5년 만기 고정형 주담대 금리를 0.05%포인트 올린다. 12일 주담대 금리를 0.10%포인트 인상한 우리은행도 24일부터 고정금리형(주기형) 아파트 담보대출 금리를 0.20%포인트 올리기로 했다.
기준금리 인하 전망 속에 5대 은행 정기예금(1년 만기) 금리는 연 3.35~3.45%로 이달 초보다 0.10%포인트가량 떨어졌다. 가계대출 증가 속도를 늦추라는 당국의 압박에 대출금리를 올리면서 예대금리차가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대출금리는 시장금리에 영향을 받는 준거금리에 은행이 자체 책정한 가산금리를 더하는 방식으로 결정된다. 주택담보대출 준거금리는 고정형(주기형)은 은행채, 변동형은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가 산정 기준이다. 문제는 기준금리 인하 기대 속에 은행채 금리와 코픽스 등 준거금리가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6일 기준 은행채 5년 만기(무보증·AAA) 금리는 연 3.310%로 2022년 4월 7일(연 3.269%) 후 27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준거금리가 하락하자 은행들은 어쩔 수 없이 가산금리를 올리는 방식으로 주담대 금리를 높이고 있다. 시장금리를 외면한 가산금리 인상은 예대금리차(예금금리와 대출금리 차이) 확대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KB 신한 하나 우리 등 4대 금융의 올 2분기 당기순이익 추정치는 4조5290억원으로 전년보다 5.8%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준거금리가 떨어지면서 실제 주담대 금리 인상 효과도 미미한 편이다. 주담대 최저금리가 5대 은행 중 가장 낮은 신한은행의 이날 주담대 최저금리는 연 2.86%로 금리 인상 이전인 11일과 동일하다. 금융당국의 금리 개입이 기준금리 조정을 통한 통화정책을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내 집 마련에 나선 실수요자들도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수도권의 한 시중은행 지점장은 “예금금리는 떨어지는데 왜 대출금리만 올리느냐고 항의하는 고객들에게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보형/정의진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