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현대판 '알람브라 칙령'

입력 2024-07-16 17:29
수정 2024-07-17 00:09
상속세 인하를 말하면 늘 나오는 반대 이유가 있다. 바로 ‘부자 감세’는 안 된다는 논리다. 부자가 대를 이어 부자가 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부의 세습은 부의 불평등을 야기하고 그로 인한 사회 문제가 있으니 부의 세습을 끊기 위해선 상속세가 꼭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20개 국가에는 상속세가 없다. 그리고 나머지 18개 국가의 상속세율도 한국보다 높은 나라가 없다. 상속세가 있는 나라도 이런저런 상속세 공제와 면제가 있고, 재단을 활용한 경우 실질 상속세는 10% 내외가 대부분이다. 한국처럼 50~60%의 높은 세율로 부자의 씨를 말리려는 상속세를 보유한 나라는 전 세계에 없다.

부자의 씨를 말려서 나라가 잘되고 모두가 행복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역사는 그런 결과를 보여주지 않았다. 1492년은 스페인과 세계사에 중요한 변곡점이 된 해다. 1492년 콜럼버스가 스페인의 지원을 받아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였고, 같은 해에 스페인은 이슬람 세력의 마지막 보루인 그라나다를 정복하여 레콘키스타(Reconquista·국토 수복 운동)를 종결지었다. 이에 따라 스페인은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만들며 황금기를 맞이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황금기는 오래가지 못하였다. 알람브라 칙령 때문이다. 알람브라 칙령은 1492년 발표된 유대인 추방령으로 스페인 내 모든 유대인에게 가톨릭으로 개종하거나 나라를 떠나라는 것이었다. 추방령은 종교적인 명분으로 제시되었지만, 실제로는 스페인의 재정적 문제를 해결하고, 유대인에게 빌린 돈을 청산하며, 이슬람 세력을 물리친 후 보상으로 땅과 재화를 나눠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역사학자들은 말한다. 부자인 유대인을 없애고, 부자의 돈을 빼앗아 전쟁에 참여한 평민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은 그 당시 여러 가지 사회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요즘 식으로는 부의 불평등을 해소하고 정치적인 목적도 동시에 달성하는 ‘묘수’라고 부를 수 있겠다. 하지만 이에 따라 당시 스페인 왕국의 금융 및 유통망을 장악하고 있던 많은 유대인이 영국과 네덜란드 등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스페인 경제는 급속도로 붕괴되었다. 칙령 발표 후 약 60년 뒤인 1557년에 스페인 왕국은 파산에 이르렀다.

요즘 상속세를 피해 많은 기업인이 대한민국을 떠나고 있다. 기업을 팔고 이민을 하거나 상속세가 없는 나라로 해외 이전을 해서 자녀들에게 재산과 기업을 물려주려고 한다. 누구나 자식 잘되게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것은 똑같다. 이런 인간의 본성을 욕하기보다는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이 사회 전체에 도움이 되도록 만든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활용하여 우리의 문제를 풀어야 한다. 애덤 스미스가 주장하였듯이 개개인의 이기적인 행동이 사회 전체적인 목적을 달성하고 효율적인 자원 배분과 경제 성장을 하도록 하는 것이 자유주의 시장경제다.

부자들이 부자가 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남들이 못 보는 기회를 보고 그 기회에 투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회는 위험을 동반한다. 사업 기회에 투자하는 것은 곧 투자 원금을 모두 잃어버릴 수도 있는 위험을 스스로 부담하는 것이다. 그런 위험을 부담하고 성공하면 상속재산에 대해 절반 넘게 상속세로 내야 하고, 실패하면 당신 책임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부자 중에는 어부지리로 부자가 된 경우가 있다. 그들을 벼락부자라고 한다. 본인이 특별한 노력을 한 것도 아니고 특별한 기회를 찾은 것도 아닌데, 자고 일어나니 부자가 된 것이다. 옆집 사람 입장에서는 참으로 배가 아픈 일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런 부자는 오래가지 못한다. 축구 시합을 하다가 우연히 찬 볼이 골대를 뚫고 들어가는 그런 행운이 계속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벼락부자가 대를 이어 부자로 사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지나가는 일만큼 어려운 일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상속세로 부자를 징벌하고 부자들이 대한민국을 떠나게 하는 것은 스페인의 알람브라 칙령과 다르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