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은 지난 4월 총선에서도 ‘내년 1월 금융투자소득세 시행’이라는 입장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국민의힘이 금투세 폐지 입장을 밝힌 것과 대비됐다. 하지만 시행 5개월여를 앞둔 10일 이재명 전 민주당 대표가 금투세 유예 가능성을 언급한 건 1400만 명에 달하는 개인투자자의 반발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 주식 투자금 이탈에 따른 주가 급락, 연말정산 시 부양가족 기본공제 혜택 제외 등을 걱정하는 개인투자자들의 목소리가 연초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한 민주당 의원은 “금투세를 예정대로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어김없이 전화나 문자 폭탄이 날아온다”고 전했다. 민주당 주 지지층인 40·50대 화이트칼라에서도 반발이 상당했다. ○李 “지금 금투세 도입 맞나”
민주당은 지금까지 국민의힘의 금투세 폐지 주장을 일관되게 ‘부자 감세’로 규정하고 반대해왔다. ‘큰손’의 증시 투자금이 빠져나가 시장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도 “공포가 과장됐다”고 일축했다. 이 때문에 “폐지나 유예 없이 일부 미비점을 보완하는 선에서 예정대로 시행될 것”이라는 게 최근까지의 분위기였다. 이런 측면에서 이날 이 전 대표가 금투세 유예 필요성을 언급한 건 당내 정책라인 기류와도 온도차가 있다. 한 민주당 정책라인 관계자는 “전날까지만 해도 금투세를 차질 없이 시행한다는 방침이었다”며 “이 전 대표의 유예 시사 발언에 당내에서도 크게 놀란 분위기”라고 전했다.
정치권에서는 이 전 대표가 금투세 도입의 당위성은 인정하더라도 1400만 명에 이르는 개인투자자의 반발을 외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무엇보다 이 전 대표가 이날 출마 선언에서 민생경제 해법을 제시한 마당에 개인투자자를 비롯한 일반 서민층의 자산 증식에 막대한 영향을 주는 금투세 문제를 전향적으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대한상공회의소의 지난달 조사에 따르면 내년 1월 금투세가 도입되면 국민 10명 중 7명(68%) 정도가 투자를 줄이겠다고 답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금투세가 도입되면 기관투자가들의 매도 물량이 쏟아질 것”이라며 “시장을 움직이는 기관 등 큰손이 주식시장을 이탈해버리면 결국 소액주주만 피해를 본다”고 했다. 이 전 대표가 이날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주가가 떨어진 몇 안 되는 나라가 됐다”며 “이런 상태에서 금투세를 예정대로 도입하는 게 정말로 맞느냐는 생각”이라고 얘기한 것도 이 같은 시장의 우려에 공감했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사실상 폐지 수순 밟나시장의 관심은 이날 이 전 대표의 언급이 실제 금투세 도입 유예, 나아가 폐지로까지 이어질지에 쏠린다. 우선 이 전 대표가 시사한 건 금투세 ‘폐지’가 아니라 ‘유예’지만 사실상 금투세가 도입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당초 금투세는 지난해 도입할 예정이었지만, 내년으로 2년 한 차례 유예됐다. 이번에 1년 더 추가로 유예하면 지방선거가 있는 2026년부터 시행된다. 2026년분 수익에 대해 2027년 금투세가 부과되는 구조인 점을 감안하면 2027년 대선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2년 유예될 경우 2028년 총선에 악재가 된다. 정치권 관계자는 “선거 일정을 감안하면 이번 유예 방침이 사실상 금투세 폐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변수는 일부 당내 강경파의 목소리다. 진성준 정책위원회 의장은 “금투세 유예든 폐지든 시행을 미뤄 부자들 세금을 걷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차질 없이 금투세를 시행하겠다고 해왔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와 정무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 중에서도 예정대로 금투세를 시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우세하다.
이는 ‘친명일극’ 체제를 구축한 이 전 대표가 잠재울 것이라는 관측이다. 2022년에도 당내 반발이 있었지만 이 전 대표가 나서 유예로 방향을 틀었고, 현재 민주당 내 친명 세력은 2년 전보다 확대됐기 때문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종합부동산세 등 다른 세금에 비해 금투세는 민주당의 정체성에 비춰 꼭 밀어붙여야 할 세금은 아니다”며 “이 전 대표가 금투세와 관련해 정무적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 금융투자소득세
주식·채권·펀드·파생상품 등 금융투자상품에서 투자자가 1년간 거둔 손익을 통산해 20~25% 세율로 과세하는 제도다. 주식은 연 순수익 5000만원, 채권·펀드·파생상품 등은 순수익 250만원 이상부터 부과된다.
한재영/배성수/심성미 기자 j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