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물가 관리, 기업 팔 비틀기 이어 망신주기 하나

입력 2024-07-07 17:50
수정 2024-07-08 07:04
정부가 원재료 가격이 떨어졌는데도 제품 가격을 내리지 않는 기업 명단을 공개한다고 한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등 소비자단체가 분기별로 ‘소비자 물가감시 리포트’를 발행하고 여기에 원재료 가격 하락에도 가격을 유지 또는 인상하는 품목을 조사해 공개하겠다는 것이다. 가격을 올리지 않은 척하면서 제품 용량을 줄이거나 품질을 떨어뜨리는 슈링크플레이션, 스킴프플레이션 사례도 공개할 계획이다.

정부의 물가 안정 대책에 협조하지 않는 기업을 공개해 망신을 주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정부는 그동안 물가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면서 ‘기업 팔 비틀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지난해 11월엔 주요 가공식품에 물가관리 전담자를 지정했다. 이명박 정부 때 논란이 됐던 ‘빵 사무관’ ‘우유 사무관’ 등을 부활시킨 것이다. 이후 관련 부처에선 수시로 기업 담당자에게 전화해 담당 품목 가격을 점검하고 때론 기업을 호출해 가격 인상을 억제했다. 실제 상당수 기업이 원자재 가격이 오르는 상황에서도 정부 눈치를 보느라 인상 계획을 접어야 했다.

그랬던 정부가 이제는 ‘원자재 가격이 내리는데 왜 제품 가격을 내리지 않느냐’며 개입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용량, 품질을 낮추면서 안 그런 척 속이는 슈링크플레이션 등은 문제가 있다. 소비자단체가 자발적으로 그런 제품을 조사해 공표하는 걸 나무랄 수도 없다. 하지만 정부가 물가 관리 수단으로 이를 악용하는 건 다른 문제다. 정부는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시장 감시’를 핵심 물가 대책으로 제시하면서 ‘소비자 물가감시 리포트’를 주요 정책으로 거론했다. 특히 리포트에 포함된 품목은 공정거래위원회 전담팀에서 법 위반 혐의 등을 중점적으로 모니터링하겠다고 했다. 망신주기와 공정위 조사를 병행해 기업을 압박한 것이다.

제품 가격은 원재료 가격만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다. 인플레이션 때문에 인건비와 임차료, 유통비도 올랐다. 원재료 가격이 내렸다는 이유만으로 제품 가격 인하를 요구하는 게 무리한 이유다. 가격에 직접 개입하기보다 유통구조 개선, 수입 장벽 제거 등 인플레를 부추기는 구조적 문제를 푸는 게 정부가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