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정부는 지난해 10월 기획부 산하 관보를 통해 자국에 수출하는 모든 제품에 대해 아랍어 또는 아랍어와 영어로 표시해야 한다는 규정을 신설했다. 올해 5월 14일부터 통관되는 모든 제품에 적용된다고 명시했다.
이라크에 대규모 수출을 해온 LG전자에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규제 시행까지 불과 7개월 남짓 남은 터라 정해진 기간 내 해당 규정을 지키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지승현 LG전자 고객품질연구소장(사진)은 “아랍어를 사용하라는 문구와 관련해 적용 대상 등에 대한 가이드가 부족해서 난감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 같은 일은 개발도상국에 수출하는 과정에서 빈번하게 벌어진다. 매번 규제가 발표될 때마다 세부 사항에 대한 추가 질의를 해야 하는 게 다반사다. 지 소장은 “북미, 유럽 시장 외 수출 지역 다변화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신흥국에선 기술규제 대응에 어려움이 크다”고 토로했다.
해결사로 나선 건 국가기술표준원 무역기술장벽(TBT) 종합지원센터(TBT센터)였다. LG전자는 먼저 TBT센터에 애로사항을 호소했다. 시행 시기를 1년간 유예하는 데 나서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요건에 맞춰 개발을 수정하고 포장, 선적하려면 18개월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TBT센터는 즉각 이라크 정부에 적용 시기를 2025년 5월 14일 이후로 해달라고 요청했다.
지 소장은 “TBT센터가 있었기에 유관 협단체와 품목별 협의회 등을 통해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규제 적용 측면에서 유권해석에 차이가 발생할 경우 국내 기업은 시장별로 세분화돼 있는 해외 기술규제에 대응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민간 시험·인증기관과 주요 기업이 무역 기술장벽에 공동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정부가 매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