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근거지를 두고 가짜 검사 사무실까지 만들어 영상통화하는 등의 수법으로 1891명의 돈을 가로챈 기업형 보이스피싱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피해 규모는 무려 1490억 원에 달해 단일 조직 보이스피싱 범죄로는 최대 규모다. 피해자 중엔 현직 대학교수와 의사 등 전문직 종사자도 다수 있었다.
1일 충남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2017년 4월 중국 항저우에 콜센터를 차리고 검찰과 금융감독원을 사칭해 1891명을 상대로 올 4월까지 보이스피싱 범행을 저지른 조직원 76명 중 한국인 조직원 44명을 붙잡았다고 밝혔다. 경찰은 사기 및 범죄단체가입·활동 등 혐의로 이들을 지난달 말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에 따르면 피해자 중엔 현직 서울대 교수가 10억 원 가까이 피해를 당하는 등 고소득 전문직과 대기업 직원, 공무원 등도 포함됐다.
전문직 종사자가 고액의 피해를 당할 만큼 보이스피싱 일당의 범행 수법은 교묘했다. 경찰 조사 결과 일당은 검사, 검찰 수사관, 금감원 직원 등으로 역할을 분담해 3단계에 걸쳐 단계적으로 피해자를 속였다.
먼저 검찰 수사관을 사칭한 조직원이 해킹으로 알아낸 피해자의 휴대전화 번호로 전화를 걸어 "명의가 도용돼 계좌가 범행에 사용됐다"고 통보하며 접근했다.
이어 "지폐 일련번호 확인이 필요하다"며 문자메시지로 보낸 링크를 클릭하도록 유도해 악성 애플리케이션(앱)을 휴대전화에 설치했다. 믿지 못하는 피해자들에겐 "112 신고로 확인해보라"고 한 후 앱을 활용해 전화를 가로챘고, 가짜 옷과 명패 등으로 꾸민 가짜 검사실에서 피해자와 영상통화하면서 허위 영장 등도 제시했다.
마지막 단계로 금감원 직원을 사칭한 조직원은 "대출이 가능한지 확인해야 한다"라며 한도까지 대출을 받아 모두 보내게 했다. 경찰 관계자는 "일반 피해자도 다수 포함돼 있지만 고소득자가 상대적으로 대출이 유리하다보니 피해 액수가 크다"고 밝혔다.
일당들은 검거 직전 인공지능(AI) 기반 이미지 합성 기술을 활용해 방송에 출연한 적 있는 검사의 얼굴과 목소리를 합성하며 신종 보이스피싱 수법을 개발 중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국가기관에선 절대로 영상통화로 사무실을 보여주거나 현금 제공 및 대출 실행을 유도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하라"고 당부했다.
장지민 한경닷컴 객원기자 newsinf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