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유럽 정치의 주인공은 우파다. 유럽연합(EU) 회원국 지도자 가운데 최근 가장 주목받는 이는 중도우파 성향인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다. 친(親)시장 정책으로 한때 ‘유럽의 병자’로 꼽혔던 그리스의 경제를 회생시킨 공로를 인정받으며 지난 6월 재집권에 성공했다.
스위스의 최근 총선에서는 역시 우파 성향인 여당 스위스국민당(SVP)의 득표율이 2019년 선거 때보다 높아졌다. 스웨덴 총선(지난해 9월), 핀란드 총선(올 4월), 스페인 지방선거(올 5월)에서도 우파가 좋은 성적을 거뒀다. 유럽 우파 바람의 상징인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집권 1년을 맞은 이달에도 지지율 1위(소속 정당 기준)를 달리고 있다. 네덜란드의 다음달 총선에서도 우파가 약진할 거란 전망이 나온다. 유럽 反이민 정서의 뿌리는유럽 정계에서는 극우를 포함한 우파가 약진한 표면적인 이유로 이민자 문제를 든다.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이민자 유입이 급증하는 데 유럽인들이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반(反)이민 공약을 내세운 우파가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민자 문제는 결과물이다. 유럽인들이 과거처럼 이민자들에게 너그러울 수 없는 이유는 경제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로존(유로화를 사용하는 20개국)의 물가는 고공행진했다. 올 하반기 유로존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 안팎 수준으로 치솟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절정에 달한 작년 말(10%대)보다는 낮지만 유럽중앙은행(ECB)의 목표치인 2%를 크게 웃돈다. EU의 대국인 독일 경제는 3분기에 역성장했을 거란 추정이 나오고, 이 여파로 유로존의 같은 기간 경제성장률은 0%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커졌다. 당장 자신의 경제적 미래가 불투명해진 유럽인들이 어떻게 이민자들에게 너그러울 수 있을까. 되새겨야 할 빌 클린턴의 이 말경제가 어려울 때 유권자가 보수화하는 건 세계적인 현상이다. 유럽을 넘어 아르헨티나 대선에서 극우 성향의 신인 정치인 하비에르 밀레이가 돌풍을 일으킨 주요 원인도 살인적인 물가로 대표되는 경제난이 꼽힌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보수 정당은 경제 정책에 강점이 있다는 점을 앞세우고, 유권자도 살림살이가 팍팍해질 때 우파를 택할 가능성이 커진다.
물론 경제가 어려울 때 보수가 무조건 승리한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대표적인 사례가 영국이다. 영국의 집권 보수당을 이끄는 리시 수낵 총리는 재무장관을 지낸 ‘경제통’이다. 하지만 높은 물가로 ‘생활비 위기’를 겪고 있는 영국인들은 우파 성향 보수당보다 좌파 성향 노동당에 더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지난달 영국 매체 옵서버가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노동당 지지율이 보수당 대비 15%포인트가량 높다. 응답자들은 수낵 총리에게 등을 돌린 이유로 역대 보수당 출신 총리와 달리 경제 문제를 잘 다루지 못한다는 점을 들었다.
경제 문제가 정치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는 건 명확하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1992년 선거 캐치프레이즈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는 3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