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g version="1.1" xmlns="http://www.w3.org/2000/svg" xmlns:xlink="http://www.w3.org/1999/xlink" x="0" y="0" viewBox="0 0 27.4 20" class="svg-quote" xml:space="preserve" style="fill:#666; display:block; width:28px; height:20px; margin-bottom:10px"><path class="st0" d="M0,12.9C0,0.2,12.4,0,12.4,0C6.7,3.2,7.8,6.2,7.5,8.5c2.8,0.4,5,2.9,5,5.9c0,3.6-2.9,5.7-5.9,5.7 C3.2,20,0,17.4,0,12.9z M14.8,12.9C14.8,0.2,27.2,0,27.2,0c-5.7,3.2-4.6,6.2-4.8,8.5c2.8,0.4,5,2.9,5,5.9c0,3.6-2.9,5.7-5.9,5.7 C18,20,14.8,17.4,14.8,12.9z"></path></svg>'대체, 투자란'은 다양한 투자 자산에 대한 지식을 전해드리는 팟캐스트 콘텐츠입니다. 유튜브 채널 <한경 코리아마켓>에서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임현우 기자
여러분은 스파이 하면 뭐가 떠오르시나요. 선글라스를 멋있게 끼고 비밀 작전을 수행하는 첩보원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은데요. 주식투자를 좀 하는 분이라면 아마도 다른 스파이 같이 떠오르실 겁니다.
미국의 대표 주가지수인 S&P500의 움직임에 따라서 수익률이 결정되는 상장지수펀드(ETF) 'SPDR S&P500'의 종목 코드가 바로 스파이(SPY)입니다. 서학개미가 많이 들고 있는 해외 주식 10위 종목이기도 한데요. 오늘은 스파이에 대해 우리가 잘 몰랐던 역사적 사실들 하나하나 소개해 보겠습니다. 몰라도 상관없지만 알아두면 더 재밌습니다.
자, 올해 초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 외벽에 초대형 현수막이 하나 걸렸습니다. 스파이의 30년을 축하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네요. 월스트리트가 스파이의 30번째 생일을 이렇게 격하게 축하해주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미국 최초의 ETF라는 상징성 때문입니다.
스파이는 1993년 1월 22일 653만 달러 규모로 설정됐습니다. 한 주 뒤인 1월 29일에는 거래소에서 첫 번째 거래를 시작하게 됩니다. ETF 시장의 조상님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상품인데요.
참고로 미국 최초의 ETF이긴 한데 세계 최초 ETF는 아닙니다. 1990년 3월 캐나다 증시에 상장된 토론토 35지수 추종 ETF가 더 선배님이긴 합니다. 하지만 세계 금융의 중심이 미국 시장이기 때문에 스파이의 위상과는 비하기가 어렵겠죠.
흔히 ETF에 투자하면 시장을 통째로 사는 효과가 있다고 많이들 이야기를 합니다. S&P500이 미국 증시의 500개 대형주로 만든 주가지수니까 스파이를 사면 이 500개 기업 주식을 한방에 사들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올해 들어 S&P500지수가 18.62% 올랐는데요 (녹화일 기준). 스파이의 수익률은 18.74%를 기록했습니다. 거의 완전히 똑같죠. 투자자들이 종목 고르느라 이래저래 머리 싸매고 고민할 필요 없이 핵심 종목에 손쉽게 분산투자하는 것이 가능해진 겁니다.
지금은 대학생들도 많이 아는 ETF의 이런 속성이 30년 전에는 생소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스파이에는 '투자의 민주화' '아이폰급 금융 혁신' 이런 거창한 수식어들도 따라붙고 있습니다.
스파이는 스파이더라는 애칭으로도 불리죠. 이 상품명의 SPDR이 스파이더와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30년 전 상장 기념행사에서도 거래소에 커다란 거미 모형을 내걸었습니다.
이 ETF는 미국의 자산운용사 스테이트스트리트글로벌어드바이저(SSGA)가 만들었는데요. 상품 이름을 정할 때 고민이 많았다고 합니다. 처음엔 창을 뜻하는 스피어라는 단어를 연상시키는 SPIR 이야기가 나왔는데, 창은 밑으로 내리꽂는 이미지, 그러니까 수익률이 뚝뚝 떨어지는 느낌이 난다고 해서 채택되지 못했습니다. 이것저것 토론하다가 낙점된 게 SPDR이었는데요. 원래 SPDR은 '스탠더드&푸어스 예탁 증권'이라는 좀 딱딱한 말의 약자입니다. 하지만 투자자들이 스파이더를 떠올릴 것이라는 점을 노린 의도적인 작명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스파이가 처음부터 잘나갔던 건 아닙니다. 1993년 6월 한때는 하루 거래량이 17,900주에 그치는 등등 초반 흥행이 지지부진 했는데요. 상장폐지하자는 얘기 나올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호주 연기금을 시작으로 이런 스파이에 매력을 느낀 투자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요. 당시에는 뮤추얼 펀드를 매수하려면 신청서를 작성하고 이런저런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했는데 스파이를 활용하면 거래소에서 곧바로 쉽게 구매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스파이를 처음 고안한 사람은 미국 증권거래소의 상품 개발 직원이었던 네이트 모스트라는 인물입니다. 모스트는 1992년에 미국의 거대 자산운용사인 뱅가드를 찾아간 적이 있는데요. 인덱스펀드의 창시자로 유명한 존 보글 회장을 만나서 ETF를 내놓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사실 인덱스펀드와 ETF는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습니다. 인덱스펀드를 증시에 상장해서 테슬라나 삼성전자 주식 사고팔듯이 간편하게 거래할 수 있도록 한 게 ETF니까요. 하지만 당시 보글은 ETF 출시에 반대했다고 합니다. 단타 거래를 유발해서 투자자에게 오히려 손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모스트는 또 다른 자산운용사인 스테이트스트리트글로벌어드바이저를 찾아가서 함께 손잡고 스파이를 만들게 됐습니다.
보글 회장, 나중에 후회를 좀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현재 스파이는 세계에서 가장 덩치가 크고 제일 활발하게 거래되고 있는 ETF입니다. 운용자산이 4000억 달러, 하루 평균 거래대금은 400억 달러 안팎에 이르고 있는데요. 코로나 사태 직후에 증시가 날개 없이 추락하던 2020년 2월에는 하루 거래대금이 1000억 달러를 돌파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쑥쑥 성장하면 경쟁자들이 따라붙지 않을 수가 없죠. 파이낸셜타임스는 "스파이의 패권이 2023년에 무너질 것 같다, 규모 면에서 라이벌 관계인 다른 S&P500 ETF에 추월당할 수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스파이를 거래해본 분들은 VOO나 IVV도 많이 아실텐데요. 뱅가드가 만든 '뱅가드 S&P500', 또 블랙록이 내놓은 '아이셰어즈 코어 S&P500'이 대표적인 후발 경쟁주자입니다. 상품 구조는 똑같지만 수수료는 훨씬 저렴한 게 특징인데요. IVV와 VOO의 수수료는 모두 0.03%. 스파이가 0.09%니까 3분의 1에 불과합니다. 운용자산 그래프를 봐도 실제로 많이 따라잡은 상황입니다. 존경받는 왕도 언젠가는 왕관을 넘겨줘야 될 때가 오게 마련인데, 스파이는 ETF의 왕좌 자리 계속 지켜낼 수 있을까요.
스파이는 세계 ETF 산업이 성장하는 밑거름이 됐다는 점에서 투자의 역사에 큰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현재 세계적으로 10,000개에 육박하는 ETF가 거래되고 있습니다. 스파이처럼 주가 지수를 단순 추종하는 상품뿐만 아니라 특정 산업과 테마에 투자하는 독특한 ETF가 넘쳐납니다. 스파이라는 상품이 미국 시장에 제대로 안착하지 못했다면 지금처럼 다양한 ETF를 만날 수 있는 시기는 아마도 많이 늦춰졌을 겁니다.
국내 투자자들의 스파이 ETF 보유액 10억 달러를 넘어섰는데요. 매달 적립식으로 사 모으는 분들도 많이 계시죠. 스파이가 열심히 구르고 불어나서 우리들의 성투의 꿈, 계속 이뤄줬으면 좋겠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영상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기획·진행 임현우 기자
디자인 이지영 디자이너
촬영 신정아·박정호 PD
편집 박정호 PD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