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주변에서 그를 지켜본 사람들은 ‘기업인 신동빈’에 관해 대개 이렇게 말한다. ‘스스로 능력을 입증한 2세대 창업가.’ 1990년 호남석유화학(현 롯데케미칼) 상무를 시작으로 2011년 회장에 오를 때까지 엄부(嚴父) 신격호 명예회장 밑에서 혹독하게 보낸 수업의 시간만 20여 년이다. 신 회장이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해 임직원에게 ‘오너의 마인드를 가진 롯데맨’이 되기를 주문하는 건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많다.
겉으로 보기에 그의 리더십은 차분하고 절제됐다. 골프 행사 등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정장 차림을 고수한다. 공식 석상에선 정제되고 준비된 언어로만 임직원과 소통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말에 낭비가 있으면, 그로 인해 잡음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사석에서도 비슷하다. 화를 낼 때조차 끝내 경어를 버리지 않는 걸 보고 혀를 내두른 직원이 많다.
그렇다고 마냥 신중한 것만은 아니다. 엄격하게 롯데의 본업과 연관된 신사업을 모색한 뒤 한 번 결단하면 번개같이 움직인다. 그는 2016년 모교인 미국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MBA) 재학생들을 당시 건축 단계에 있던 롯데월드타워에 초청했다. 이때 후배들이 롯데의 성장 비결을 묻자 주저 없이 “M&A(인수합병)”라고 답했다.
신 회장은 2004년 그룹 정책경영본부장에 임명되면서 그룹 경영 전반에 본격적으로 관여하기 시작했다. 이후 올해 일진머티리얼즈(현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인수까지 60여 건의 M&A(전략적 투자 포함)를 성사시켰다. 2004년 24조6000억원 규모였던 롯데그룹의 총자산은 지난해 말 129조7000억원(공정거래위원회 공정 자산 기준)으로 다섯 배가량 증가했다.
신 회장은 롯데 임직원들조차 ‘롯데는 레거시(고유의 문화)를 중시하기 때문에 변화를 싫어한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가장 아쉽게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토론과 논쟁을 즐기는 조직 문화를 구축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 신 회장 주변의 얘기다.
요즘 그는 대내외적으로 여느 때보다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외부적으론 2030 부산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를 위해 발 벗고 나섰다. 민간 외교 단체인 아시아 소사이어티 코리아 공동회장으로서 지난달 13일 30개국 주한대사를 부산으로 불러 직접 세일즈하기도 했다.
신 회장은 엑스포 유치가 ‘롯데의 도시’로 불리는 부산의 미래를 위한 일이고, 한국의 국격을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했다. 경제계 관계자는 “신 회장은 박근혜 정부 시절 뜻하지 않은 고초를 겪으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며 “이를 감안하면 나라 안팎의 인맥을 총동원해 정신없이 뛰는 그의 행보는 굳은 결심의 표현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내부적으론 미래의 롯데를 위해 새로운 그룹 포트폴리오를 짜고 있다. 롯데의 식품사업군을 확장해 네슬레에 버금가는 종합식품회사를 만드는 것도 그중 하나다.
건강기능식품까지 아우르는 생산 능력을 갖춤으로써 신사업인 헬스케어사업과 시너지를 내겠다는 전략이다. 옛 롯데제과와 푸드의 합병회사인 롯데웰푸드에 롯데칠성음료까지 합치는 방안이 논의됐을 정도다.
그룹 전반적으론 80여 개 계열사 중 미래와 관련해 시너지를 내기 어렵거나 수익성 개선이 불투명한 곳은 매각할 공산이 크다는 게 안팎의 관측이다. 이를 통해 확보한 자금을 바이오 등 신산업 투자 목적으로 쓸 것으로 전망된다. 롯데의 한 고위 임원은 “지금 롯데는 과거의 성공방정식을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미래 전략을 마련하는 시기”라며 “말단 사원부터 도전적 아이디어를 내고, 간부들은 이를 실현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게 신 회장의 주문”이라고 말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