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극렬 지지자들이 이재명 대표 팬카페를 중심으로 뭉쳐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막말을 쏟아내고 있다. "팬덤 정치가 비합리적 공격과 욕설의 정치를 가져온다"는 국회의 지적이 나온 가운데, 여권에서는 "국제 망신"이라며 이 대표를 향해 강성 팬덤과의 절연을 촉구하고 나섰다.
지난 4일 그로시 총장이 일본 후쿠시마 오염처리수의 해양 방류 계획에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담은 IAEA 보고서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에게 전달하자 일부 민주당 극렬 지지자들은 그로시 총장의 트위터, 페이스북에 우르르 몰려가 소위 '악플 테러'를 자행했다. "XXXX야! 뇌물 받아먹고 인류를 팔지 마라! XXX야" 등 심한 욕설이 섞인 원색적인 댓글도 왕왕 보인다.
이런 악플 테러의 진원지는 이재명 대표 강성 지지층인 '개딸'(개혁의 딸)들이 모인 온라인 카페 '재명이네 마을'로 파악된다. 이들은 지난달 22일부터 'IAEA 뇌물 받은 사무총장에게 항의 메일 보내기' 등의 이름으로 그로시 총장에게 항의 메일 발신 운동을 벌여왔는데, 최종 보고서 전달이 완료된 날 '그로시 좀 찾아가서 한마디 하자'며 조직적으로 '좌표'를 찍었다. 이 글 작성자는 "얘(그로시 총장)랑 트윗하는 애 찾아가서도 한마디씩 남겨달라"고 했다.
그로시 총장이 9일까지 한국에 머무르는 가운데 여권에서는 이런 움직임을 두고 '세계사적 망신'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장예찬 국민의힘 청년최고위원은 6일 "국내 정치의 물을 흐리는 강성 팬덤 개딸들이 국제 망신을 자초하고 있다"며 "이 대표는 개딸들이 세계사적 현상이라고 했지만, 세계사적 망신이 됐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 대표는 개딸들의 패악을 말리는 척 즐기지 말고, '개딸 해체'를 공식적으로 선언하라"고 촉구했다.
이 대표가 이미 여러 차례 현장 최고위원회, 유튜브 등 여러 창구를 통해 자제를 요청했지만,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강성 지지 행위는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는 모양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이낙연 전 총리 복귀까지 겹쳐 개딸들의 좌표 찍기와 집단 린치는 앞으로 심해지면 심해지지, 나아지진 않을 것"이라며 "이 대표가 강성 팬덤과 확실히 결별해내야 당이 진일보할 수 있다"고 봤다.
이처럼 당내에서도 강성 팬덤 정치가 문제로 지목되는 가운데, 팬덤 정치가 '비합리적 공격', '욕설의 정치'를 야기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국회미래연구원(박상훈 연구위원)이 지난 3일 발간한 보고서를 보면 연구원 측은 "양당제에서의 정치 양극화 심화는 특정 정치가에 대한 맹목적 지지와 이를 반대하는 같은 당 의원들에 대한 일방적 혐오를 한 짝으로 하는 팬덤 정치로 이어졌다"고 짚었다.
이어 "목소리 큰 열성적 지지자 집단이 정치를 지배하면서, 여야 정당들 사이에서 정책적 협력의 공간이 지극히 협소해지는 것 또한 한국의 정치 양극화가 가진 중요한 특징"이라며 "팬덤 정치는 당내 다원주의를 억압하고 비합리적 공격과 욕설의 정치를 가져온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최근에는 대의원제 폐지를 포함해 팬덤 당원 중심의 정당 당헌·당규 개정을 요구하며 민주적 정당정치의 미래를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며 "달라서 고통받는 독단적 민주주의가 아니라, 달라서 더 풍부해지고 더 깊은 사회적 통합을 가능하게 하는 다원적 민주주의를 위해, 정치 양극화와 팬덤 정치에 대한 진지한 개선의 노력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