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초급속 충전기 1위 SK시그넷의 선언 "세계 점유율 30% 목표"

입력 2023-06-06 17:49
수정 2023-06-07 00:41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동북쪽으로 약 32㎞ 떨어진 플레이노(Plano). SK시그넷의 간판이 커다랗게 보인다. 급팽창 중인 미국 전기차 충전기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SK시그넷이 지은 최첨단 충전기 공장이 5일(현지시간) 준공식을 열었다. 미국 최초로 400㎾(킬로와트)급 충전기를 연 1만 대 규모로 양산하게 된다. 초고속 충전 속도로 승부400㎾급 충전기는 현재 시장에 나온 충전기 중 충전 속도가 가장 빠르다. 미국에서 시판하는 전기차 중 제너럴모터스(GM) 허머, 포르쉐 타이칸만이 시간당 350㎾의 전력을 받아들일 수 있다. 용량이 더 커질 미래 전기차까지 수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의 전기차 시장은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이에 따라 충전기 시장도 덩달아 팽창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통과로 미 연방정부는 5년간 75억달러를 충전망 확대에 투입한다. 테슬라, 일렉트리파이아메리카(EA), 이브이고(EVgo) 등 미국 내 주요 충전소 운영 사업자(CPO)는 이런 보조금을 노리고 충전망 확대에 발 벗고 나섰다. SK시그넷이 미국에 초급속 충전기 공장을 서둘러 건설한 이유다.

CPO가 충전기 설립 비용의 80%까지 주는 연방정부의 보조금을 타려면 몇 가지 요건을 맞춰야 한다. ‘미국 내 최종 조립 및 충전기 외함에 미국산 철강을 쓸 것’ 등이다. SK시그넷이 텍사스 공장에서 제조하는 400㎾급 충전기는 이들 조건을 모두 충족한다. 신정호 SK시그넷 대표는 “굉장히 큰 충전소 보조금 시장이 열렸고 우리 제품은 미국 정부의 보조금 수령을 위한 요건을 갖췄다”며 “곧 CPO들과 여러 건의 수주 계약을 발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룹 킹핀 전략의 핵심SK시그넷은 초급속 충전기 시장에서 강력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시장 초기이긴 하지만 2300기 이상을 설치해 미국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세계 충전기 시장은 지난해 34억달러 규모에 달했고, 매년 30% 성장하고 있다. 2025년이면 7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SK시그넷은 가격이 비싸고 마진이 높은 초급속 시장을 집중 공략해 2025년 매출 1조원을 달성하겠다는 계획이다. 2022년 매출이 1600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3년 만에 여섯 배 이상 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는 셈이다. 신 대표는 “2025년 세계 시장의 30%를 차지하겠다”고 말했다.

SK시그넷의 이런 큰 도전 앞에는 ‘테슬라’란 걸림돌이 있다. 테슬라는 전기차 시장에서뿐만 아니라 미국 충전소와 충전기 사업에서도 지배적 사업자다. 신 대표는 그러나 “테슬라 슈퍼차저는 테슬라 전용으로 만들어져 다른 전기차와 충전 호환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SK그룹은 정유 등 석유 관련 사업이 여전히 핵심 사업 중 하나다. 전기차 시대의 개막은 위협 요인일 수밖에 없다. SK는 이를 오히려 기회로 삼아 공격적인 전기차 관련 투자에 나서고 있다. 전기차 사업 전반에서 토털 솔루션을 구축하는 ‘킹핀(핵심축)’ 전략이다.

SK시그넷 인수는 이런 킹핀 전략의 핵심이다. SK㈜는 2021년 약 2932억원을 투자해 시그넷을 사들였다. 이를 통해 충전기 제조 역량과 함께 미국 시장에서의 선도적 입지를 구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