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잦아들고 각국이 국경을 개방하면서 이주노동 행렬이 급격히 불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선진국에선 구인난이 심화하고 개발도상국 통화 가치는 평가절하된 탓으로 풀이된다. 세계적인 경기 둔화가 시작되면 이민 규모가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8일(현지시간) 영국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지난해 선진국으로 유입된 이민자 수는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영국에선 지난해 120만명이 유입되며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호주와 캐나다에선 지난해 순 유입 인구가 2019년 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 순 유입 인구는 유입인구에서 유출인구를 뺀 수치다.
이민자들이 선진국으로 몰리면서 지난해 선진국의 외국인 출생아 비중도 크게 늘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호주, 영국, 캐나다, 유럽연합(EU), 아이슬란드, 스위스, 노르웨이 등 선진국 출생아 중 외국 국적을 지닌 신생아 수는 전년 대비 4% 증가하며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5년 전과 크게 달라진 모습이다. 2015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내세운 반(反) 이민주의 기조로 인해 미국의 이민자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영국도 2016년 유럽연합(EU)을 탈퇴했고, 호주는 불법 이민자 단속을 강화했다. 헝가리도 난민을 수용하지 않는 쪽으로 선회했다.
2020년 코로나19가 창궐하며 이민 행렬이 끊겼다. 각국이 전염병 확산을 억제하기 위해 국경을 폐쇄해서다. 취업 비자를 발급받은 이민자 입국도 제한됐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잦아들고 경제가 다시 활성화되면서 노동 수요가 급격히 증가했다. 이코노미스트가 분석한 지난해 8개 선진국의 실업률은 평균 4.8%로 사상 최저치를 찍었다.
개발도상국의 통화가치가 급격히 하락하며 이주노동 수요도 증가했다. 지난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유로화와 달러 수요가 급증했다. 때문에 인도 루피화 등 개발도상국 통화가 평가절하됐다. 2021년 초부터 신흥국 통화가치는 달러 대비 약 4%가량 축소됐다.
선진국 기업과 개발도상국 노동자의 수요가 맞물리며 이민 행렬이 불어났다는 분석이다. 각국 정부도 이주노동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캐나다는 2023년부터 3년간 이민자 수를 150만명까지 늘리겠다고 선언했다. 독일은 인도와 이민 협정을 체결했고, 호주는 유학 비자 기한을 종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했다. 미국도 지난 11일 이민자 추방 정책을 폐기하며 국경을 개방했다.
전문가들은 이민자 증가세가 내년부터 완화될 거라고 전망했다. 경기 둔화로 인해 노동 공급이 수요를 역전하게 되면 이민 정책이 바뀔 것이란 관측이다. 도시 내 이민자 수가 증가할수록 상품 및 부동산 수요가 늘어나 인플레이션이 계속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선진국에 이민자들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치솟는 상황에도 부동산 거품이 쉽게 꺼지지 않고 있다"며 "임차료도 늘어나며 인플레이션 완화를 방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