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집권 보수당이 공공부문 등에 대해 파업 때도 최소한의 필수 서비스를 유지하도록 하는 ‘파업제한법(anti-strikes bill)’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 국회에서 하청 노조가 원청 사업자를 상대로 파업할 수 있도록 하고 노조의 손해배상 책임을 축소해 사실상 ‘파업조장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법 개정안을 야당이 강행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28일 영국 언론에 따르면 영국 의회에선 공공부문 등의 파업 참가자들에게 근로를 강제할 수 있는 ‘파업제한법’이 논의되고 있다. 이 법의 정식 명칭은 ‘최소 서비스법(Minimum Service Levels Bill)’이다. 대상 부문은 소방, 의료, 철도 등이며 항공, 선박, 화물수송, 국경수비, 원전시설 등에도 적용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부문은 파업 중에도 최소한의 필수 서비스를 유지해야 한다는 게 법안의 핵심이다.
구체적으로 사용자는 파업 중인 노조에 ‘근무 지시’를 해 최소한의 서비스 유지에 필요한 인원과 업무를 지정하고 근로 제공을 요구할 수 있다. 노조가 이를 무시하고 파업을 계속하면 사업주는 노조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으며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를 해고할 수도 있다.
법안은 지난해 10월 집권 보수당 논의를 거쳐 올해 1월 하원에서 발의됐고 2월 하원을 통과했다. 지난 4월 상원이 ‘해고’ 부분을 삭제하는 수정안을 냈지만 하원은 이달 22일 상원 수정안을 부결시켰다. 영국법에 따르면 하원이 의결을 강행하면 상원이 저지할 방법은 없다.
이 법은 ‘불만의 여름’으로 불린 지난해 여름 대규모 공공부문 파업을 계기로 등장했다. 당시 영국 정부는 공공부문 임금 인상률을 5%대로 제시했다. 지난 20여 년간 최대 인상폭이었다. 하지만 9%대에 달하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에는 미치지 못했고 노동계는 “물가 인상으로 실질 임금이 삭감됐다”며 전면 파업에 나섰다. 철도해운노조 소속 4만 명이 지난해 6월부터 파업에 들어갔고 철도 운행의 80%가 차질을 빚었다. 이후 버스, 공무원, 공공기관, 의료종사자 등 공공부문 노조가 잇달아 파업을 벌였다.
그 결과 파업으로 인한 손실이 불어났다. 영국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19년 파업으로 인한 노동 손실일수는 23만4000일인 데 비해 2022년 12월 한 달 동안 발생한 손실일수만 82만2000일에 달했다. 영국 정부가 파업제한법을 꺼내든 배경이다. 노동계는 “기본권을 박탈하는 법안”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노조는 파업을 무기로 협상하는데, 법안이 통과되면 파업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야당인 노동당은 “2025년 치러질 총선에서 집권하게 되면 법안을 반드시 폐기하겠다”고 밝혔다.
경기가 악화되면서 파업을 제한하려는 흐름도 확산되고 있다. 남궁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세계적 경제 위기에 (영국뿐 아니라) 다른 국가에서도 파업이 증가하면서 파업을 제한하려는 입법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