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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크본드(투기등급 회사채) 시장이 급속하게 위축되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이후 금융 시장 경색으로 투자자들이 정크본드 중에서도 위험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분류되는 저신용등급 채권 투자를 꺼리고 있어서다. 정크본드 시장 위축이 지속되면 자금 조달이 어려워져 채무불이행을 선언하는 기업이 속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크본드 사이에서도 양극화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이 경기 침체에 빠질 것이란 우려 때문에 1조4000억달러(약 1820조원) 규모의 미국 정크본드 시장이 냉각된 가운데, 그중에서도 초고위험 기업이 찍은 정크본드 가격이 회복되지 않고 있다”고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정크본드는 신용등급이 투기등급으로 낮은 기업이 발행한 회사채로 하이일드 채권으로도 불린다. 고위험·고수익 투자상품 중 하나다. 지난달 SVB가 파산하면서 위기가 확대될 것이란 공포가 커지자 투자자들은 대표적 고위험 자산인 정크본드를 대거 투매했다.
이후 투자심리가 다소 회복하긴 했지만 정크본드 시장 전체가 살아난 건 아니다. FT는 “정크본드 중에서도 신용등급이 높은 편인 회사채는 가격이 다소 반등했지만, 신용등급이 낮은 회사채에 대한 투기성 베팅은 자취를 감췄다”고 보도했다.
투기등급 중에서 최상단인 BB등급인 미국 회사채의 평균 수익률은 3월 중순 최고치인 연 7.27%에서 현재 6.54%까지 떨어졌다. 채권 수익률 하락은 채권 가격 상승을 뜻한다. 미 정크본드 시장의 절반이 BB등급이다. 하지만 CCC등급 이하인 회사채 수익률은 연 15.3%로 SVB발 은행 위기 공포가 극대화한 지난달 20일(연 15.6%)과 큰 차이가 없다.
FT는 “SVB 파산과 스위스 크레디트스위스(CS) 사태 이후 정크본드 사이에서도 신용등급의 높고 낮음에 따라 양극화가 뚜렷하다”며 “정크본드 투자자들은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낮더라도 비교적 안정적인 BB등급 정크본드를 선호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 국채와 BB등급 회사채 간 스프레드(수익률 격차)는 3월 중순 3.66%포인트에서 2.9%포인트로 줄었다. 같은 기간 CCC등급 회사채의 스프레드는 11.41%포인트로 SVB 파산 전보다 오히려 확대됐다. 美 경기 침체·기업 디폴트 우려 커신용등급이 낮은 회사채가 높은 수익률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에게 외면당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경기 침체 및 채무불이행 가능성이다. 경기 침체가 오면 부채가 많은 위험 기업이 채무불이행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 경우 투자자들도 손실을 볼 확률이 높아진다. 로피 카루이 골드만삭스 수석신용전략가는 “자금 조달 방법이 다양한 우량 대기업과 그렇지 못한 중소기업의 처지가 채권 시장에서 명확하게 갈리고 있다”고 평했다. 저신용등급 기업들이 자금을 조달하지 못해 막다른 길에 몰릴 수 있다는 전망이다.
스티브 카프리오 도이체방크 유럽·미국 신용전략책임자는 “미 채권 투자자들은 경기 침체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며 “미국에 경기 침체가 닥칠 거란 징후가 확실해지면 투자자들은 우량 채권에 더 몰릴 것”이라고 했다. 국제 신용 포트폴리오 매니저협회(IACPM)가 이날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올해 미국의 경기 침체를 예상한다는 답변 비율은 84%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86%는 “향후 12개월 안에 미국 기업의 채무불이행이 잇따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