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은행업계에서 위기론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은행 예금에서 유출된 뭉칫돈이 머니마켓펀드(MMF)를 거쳐 미 중앙은행(Fed)의 역환매조건부채권(RRP·역레포)에 묶여 있어서다. 시중에 자금이 돌지 않고 예금 유출이 계속되면 은행 시스템 전체가 자금 경색에 시달릴 것이란 분석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5일(현지시간) Fed의 역레포 하루 예치액이 2조2000억달러에 육박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1월에는 평균 1조5000억달러 수준이었다. 1년 새 46% 증가했다. 역레포는 금융회사가 하루 동안 Fed에 현금을 예치하고 국채를 받는 식으로 이뤄지는 초단기 거래를 뜻한다. 2013년 통화긴축 수단으로 신설됐다.
역레포 규모가 급증한 것은 가파르게 치솟은 금리 때문이다. 지난해 3월 0% 수준이던 역레포 금리는 지난달 연 4.8%까지 상승했다. 역레포 금리가 예금 금리(연 2%대)를 웃돌자 자금 쏠림 현상이 나타났다. WSJ에 따르면 MMF 자금의 약 40%가 역레포로 유입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역레포에 들어간 MMF 자금이 은행 예금에서 나온 것으로 보고 있다. 은행위기 여파로 투자자들이 예금을 인출해 MMF로 옮겼다는 것이다.
은행 예금이 MMF로 몰려도 자금이 순환했던 과거와 달리 올해는 유동성 위기가 빚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MMF는 주로 양도성예금증서(CD)나 단기 국채 등에 투자한다. 자금을 수령한 금융회사는 이를 은행 예금에 예치한다. MMF를 중심으로 선순환 체계가 작동한 것이다. 그러나 올해는 역레포에 자금이 묶여 순환이 멈출 것이란 주장이다.
스티븐 캘리 예일대 금융안정프로그램 선임연구원은 “역레포에 맡긴 현금은 사실상 ‘죽은 돈’”이라며 “유동성이 묶인 채 예금 인출이 계속되면 은행의 대출 규모가 축소돼 침체는 더 심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