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9일 중국 하이난에서 열린 보아오포럼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사회적 가치에 기여하는 기업이 살아남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자와 정부, 각종 이해관계자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에 대한 요구를 충족하는 기업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설명이다. 중국 지도부의 ESG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ESG를 활용해 중국 시장에서 돌파구를 찾으려는 전략으로 분석된다. ○중국의 ESG 수요 공략최 회장은 이날 보아오포럼의 ‘기업의 ESG 성과 측정’ 세션 개회사에서 “코로나19는 세계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고, 기후변화를 해결하고 지속가능한 개발을 달성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며 “이런 문제들을 개별 기업이 해결할 수는 없으며 협업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SK는 2018년부터 계열사가 창출한 사회적 가치를 수치화해 성과 평가 지표로 활용하는 등 ESG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중국에선 100여 개 핵심 중앙국유기업을 관리하는 국유자산관리위원회와 협업해 중국 기업에 맞는 ESG 평가지표를 개발하기도 했다. SK는 보아오포럼 주요 후원사이자 매년 포럼에서 ESG 관련 세션을 주관해 왔다.
최 회장은 “SK는 국가 주도의 기후변화 대응을 보완하기 위해 민간 중심 자발적 탄소시장의 아시아 협력체를 구축했다”며 “중국 전용 자발적 탄소시장을 함께 연구하자”고 제안했다. 자발적 탄소시장은 기업이 스스로 참여하는 탄소배출권 거래 시장이다. 그는 “탄소시장을 통해 에너지 구조를 재편하면서 중국과 한국에 새로운 기회가 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은 시진핑 국가주석이 ‘2060년 탄소중립’을 공언한 이후 기후변화 대응을 국가적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상장 국유기업은 ESG 성과를 정기적으로 공시하도록 하는 등 ESG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중국이 기후변화와 ESG를 강조하는 것은 해당 이슈를 선점해 글로벌 무대에서 리더십을 부각하고 독자적 질서를 구축하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최 회장이 4년 만에 찾은 중국에서 기업의 ESG를 강조한 것은 중국의 이런 수요에 대한 대응으로 해석된다.
최 회장은 세션 직후 한국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중국 고위급 인사와 만날 예정이냐”는 질문에 “가능하면 해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3년이 넘는 동안 한 번도 (중국에) 못 왔다”며 “중국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더 잘 관찰하고 나중에 소감을 말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25~27일 베이징에서 열린 고위층발전포럼에 참석해 리창 총리를 만난 데 이어 최 회장도 보아오포럼에서 리 총리와 면담할 것으로 예상된다. 리 총리는 30일 정식 개막식에서 기조연설을 한다. 한국 반도체 기업 수장이 잇달아 중국을 찾은 것은 미·중 패권 경쟁의 정중앙에 놓인 반도체 사업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동시다발적 위기 지속”‘세계 경제 전망’ 세션에선 토론자들이 한목소리로 올해 세계 경제가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난관을 겪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스-폴 버크너 보스턴컨설팅그룹 명예회장은 인플레이션, 에너지·식량 불균형, 은행 위기 확산, 글로벌 공급망의 디커플링(탈동조화) 등 다양한 요인이 세계 성장률을 끌어내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버크너 명예회장은 “선진국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신흥국의 부채 부담이 커지고 있다”며 “신흥국 위기는 다시 전 세계로 전이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중국을 비롯한 채권국들이 협력해 신흥국 부채 부담을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린이푸 베이징대 신구조경제학연구원 원장은 올해 이상기후로 인한 식량난이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관측했다. 린 원장은 “지구 온난화는 미래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이며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개발도상국이 발전과 기후변화 대응을 동시에 이룰 수 있도록 선진국이 더 많은 기술과 자금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보아오=강현우 특파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