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3월 22일 09:54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10년 넘게 홍콩계 사모펀드(PEF) 운용사 베어링PEA를 이끌어 온 김한철 대표가 물러나기로 했다. 김 대표는 베어링PEA의 PI첨단소재 인수를 주도했다가 일방적 파기를 선언한 장본인이다. 시장에선 한국시장에서 베어링PEA 투자팀이 사실상 해체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지난해 초 베어링PEA를 인수한 스웨덴 계열 운용사 EQT파트너스가 SK쉴더스 인수를 계기로 한국시장에서 전면에 나설 것이란 해석이다.
22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김 대표가 베어링PEA를 떠나기로 하면서 2인자 역할을 했던 연다예 베어링PEA 상무가 대표 대행 역할을 하고 있다. 베어링PEA의 차기 대표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베어링PEA 내부 사정을 잘 아는 IB업계 관계자는 “김 대표가 베어링PEA가 투자한 포트폴리오 기업과 관련해 필요한 업무를 끝으로 회사를 그만두기로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2009년부터 베어링PEA를 이끌어온 김 대표는 한국 기업 인수 및 투자를 총괄해왔다. 대표적인 거래로는 한라시멘트, 로젠택배 등이 있다. 애큐온캐피탈, 신한금융지주 소수 지분, 교보생명 소수 지분 등은 아직 보유 중이다.
김 대표의 퇴진 사유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지난해 말 일방적 계약 파기 논란을 일으켰던 1조2570억원 규모의 PI첨단소재 매각 결렬에 대한 책임을 지고 떠나는 게 아니냐는 게 업계 해석이다.
김 대표는 지난해 상반기 PI첨단소재 인수를 진두지휘한 인물이다. 롯데, 알키마 등 쟁쟁한 국내외 대기업을 제치고 인수에 성공했다. 매각 측인 글랜우드PE와의 끈끈한 인연이 주목되기도 했다. 글랜우드PE와 베어링PEA는 한라시멘트 공동 인수한 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베어링PEA가 지난해 12월 중순 거래 종료일을 불과 20여일을 앞두고 돌연 계약을 파기한 후 잠적했다.
그 파장은 엄청났다. 유가증권시장 상장기업의 조 단위 거래였던 데다 신뢰를 바탕으로 PEF 거래였기 때문이다. 시장에선 베어링PEA가 계약을 체결한 뒤 PI첨단소재 주가가 급락하자 높은 밸류에이션으로 인수한데 대한 책임을 피하기 위해 계약 파기를 결정한 것이라는 의구심이 제기됐다.
김 대표 퇴진을 계기로 베어링PEA는 기존 포트폴리오 기업을 관리하는 수준에 그치고, 신규 투자는 EQT파트너스 중심으로 이뤄지지 않겠느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EQT파트너스는 지난해 한국 사무소를 연 뒤 최근 2조원 규모의 SK쉴더스 인수를 성사시키며 활발한 국내 활동을 예고했다. 베어링PEA는 국내 M&A시장에서 크게 신뢰를 잃은 상태라 앞으로 몇년간은 적극적인 활동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EQT파트너스도 SK쉴더스 인수 과정에서 PI첨단소재 매각 파기 여파로 SK 측에서 딜 종결성에 의구심을 제기해 곤혹스러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IB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금리 인상 등 시장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딜 규모나 주목도를 감안했을 때 PI첨단소재 매각 파기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신뢰를 잃은 베어링PEA는 당분간 국내 투자 활동을 재개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