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이자 줄이려다 불법사채 판 키웠다

입력 2023-03-19 18:23
수정 2023-03-20 01:51
지난해 법정 최고이자율(연 20%)보다 높은 이자로 돈을 빌려줬다가 적발된 건수와 이를 불법 추심하다가 걸린 사건이 나란히 최근 5년 사이 최고치를 기록했다. 고금리에 신음하는 서민을 구제하겠다고 만든 ‘관치 안전판’이 거꾸로 서민을 불법 사금융 시장으로 내모는 직격탄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김형동 국민의힘 의원이 19일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이자제한법 위반 건수가 330건으로 집계됐다. 사인 간 돈거래에 적용하는 이자제한법의 위반 건수는 2018년 301건에서 2019년 258건으로 주춤하는 듯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이 본격화한 2020년 286건으로 다시 고개를 들더니 2021년 306건에 이어 지난해까지 3년 연속 상승세를 타며 최고치를 찍었다. 한때 연 66%(2002년)에 달한 법정 최고이자율은 ‘서민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일곱 차례 인하를 거듭한 끝에 2021년 연 20%로 낮아졌다. 그러나 불법 추심 등 피해는 심각한 수준으로 증가했다. 지난해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 위반 건수는 557건으로 전년(384건) 대비 약 45% 늘어났다.

치솟는 대출금리와 달리 법정 최고이자율은 낮게 고정돼 있어 불법 금융에 따른 사고와 피해가 확산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은행과 같은 제도권 금융회사는 시장 원리에 따라 높은 이자율을 매길 수 없는 서민에게 대출해줄 유인이 없다.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이 고금리 불법 사채에 손을 벌리고, 이들을 악성 사채업자가 쥐어짜는 불법 추심이 되풀이되는 배경이다.

전문가들은 시장 원리가 아니라 정치 논리가 빚어낸 ‘예고된 결과’라고 입을 모은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서민의 이자 부담을 경감해준다는 취지로 낮춘 최고금리가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을 사금융 판으로 내쫓은 것”이라며 “경제적인 논리가 아니라 정치적인 논리로 이자율을 결정해 애꿎은 서민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광식/조봉민 기자 bume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