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시장에 저가 매수세가 몰리면서 응찰자 수가 전국 평균 8.1명으로 뛰어올랐다.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이 평균 70%대를 기록하자 시세보다 싸게 물건을 확보하려는 입찰 경쟁이 그만큼 치열해진 것이다. 하지만 경매 전문가들은 ‘감정가 착시현상’을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입찰 기준인 감정가는 통상 6개월~1년 전 시가를 반영하기 때문에 하락장에선 시세보다 비싼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감정가 시차 6개월…재감정도 가능
13일 부동산경매 전문업체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 2월 전국 아파트 응찰자는 평균 8.1명으로 집계됐다. 2020년 6월 이후 2년8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작년 하반기엔 전국 평균 5명 안팎에 불과했다. 경기와 인천의 평균 응찰자 수는 각각 13.7명, 10.4명에 이를 정도다. 서울도 8명으로 전국 평균 수준까지 올라왔다.
찬바람 불던 경매시장이 뜨거워진 것은 저가 매수세 때문이다. 지난달 전국 아파트 낙찰가율은 전월(75.8%)보다 1.2%포인트 낮은 74.6%를 기록했다. 2012년 8월 이후 10년6개월 만의 최저치다. 감정가보다 30% 싼 가격에 아파트 매수 수요가 몰렸다는 의미다.
하지만 낙찰가율만 보고 저가 매수 기회라고 보는 건 착시효과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낙찰가율을 정하는 기준이 감정가인데 감정가는 최소 6개월 전 시세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금리 인상 기조가 본격화한 지난 하반기부터 집값이 급격히 하락한 만큼 현재 감정가는 상승기 때 가격이 반영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감정가는 법원이 경매 절차를 개시하면서 선임한 감정평가사가 정한다. 채권자, 채무자 양쪽과 이해관계가 없는 제3자가 공정한 평가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민사집행법상 감정평가사는 2주 안에 감정가를 넣은 평가서를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 경매 절차 개시와 감정평가서 나오는 시점은 차이가 없지만 첫 번째 매각 기일까지 최소 6개월이 걸린다. 개별 법원의 사정으로 6개월 이상 걸리는 경우도 많다. 이런 시차로 집값 상승기엔 감정가가 시세보다 낮은 편이고, 하락기엔 감정가가 시세보다 높아진다. 이주현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감정가가 합당하지 않다고 여겨지면 채권자, 채무자 누구나 재감정을 요구할 수 있다”며 “무조건 재감정하는 건 아니고 법원이 합리적인 이유라고 판단할 때만 요청이 받아들여진다”고 말했다. 높은 감정가…“저가 매수 맞아?” 갸우뚱최근 경매시장에 나온 물건은 2021년 하반기 또는 작년 상반기 감정이 이뤄진 게 대부분이다. 집값이 꺾이기 전 감정가가 산정된 것이다. 집값 하락률이 높은 경기, 인천 등 수도권에선 낙찰가율이 70%인데도 낙찰가가 급매 가격보다 높은 경우가 적지 않다.
경기 수원 팔달구 화서동 A아파트 전용 84㎡는 지난 8일 낙찰가율 71.9%인 5억3300만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응찰자가 26명에 달할 정도로 입찰 경쟁이 치열했다. 하지만 현지 중개업소에 같은 평형 아파트는 5억2500만원(매도 호가 최저)에 나와 있다. 작년 5월 산정된 이 경매 물건의 감정가(7억4200만원)는 이 단지 최고가 7억7400만원(작년 5월)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부천 중동 B아파트 전용 34㎡도 이달 초 경매시장에서 2억3000만원에 매각돼 낙찰가율 70.6%를 기록했다. 작년 5월 산정된 감정가는 3억2600만원으로, 역대 최고가(3억4000만원·2021년 10월 금액)와 비슷했다. 이 아파트의 최근 직거래 가격은 1억6000만원이고, 중개 거래도 2억~2억3200만원에 매매됐다.
감정가가 신고가보다 높은 사례도 있다. 수원 영통구 이의동 C아파트 전용 120㎡는 이달 초 응찰자 40명이 몰려 14억여원(낙찰가율 68.6%)에 팔렸다. 이 아파트의 감정가는 20억4000만원으로, 역대 최고가(20억원)를 웃돈다.
심은지 기자 summ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