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서울 강북의 한 미분양 아파트를 고가에(?) 매입해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평균 분양가 대비 12% 할인된 가격으로 매입한 게 발단이었습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LH가 국민 혈세로 건설사의 이익을 보장해주고 도덕적 해이를 부추겼다"고 한마디 하면서 LH는 매입임대제도 전반에 대해 국민 눈높이에 맞게 개선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전국 미분양 물량이 7만5000여가구에 육박하는 가운데 미분양 해결의 돌파구가 될 수 있는 매입임대 시장이 위축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LH는 지난해 초 매입약정 방식으로 주택 4만3000가구를 매입한다고 밝혔습니다. ‘민간건설주택 매입약정방식’은 LH가 민간사업자의 건축 예정 또는 건축 중인 주택에 대해 건축 완료 전 매입약정을 체결한 뒤 준공 후 매입해 매입임대주택으로 활용하는 사업입니다. 준공된 주택을 매입하는 기존 방식과 달리 건축 완료 이전에 매입약정을 체결하고 건축 주요 공정에 대해 LH가 점검을 실시합니다. 전반적인 주택 품질 향상을 기대할 수 있고, 민간 사업자는 미매각?미분양 위험을 해소하고, LH에서 지급하는 약정금으로 자금조달 부담을 줄일 수 있는 게 장점입니다.
당시 자료에 따르면 매입지역은 전국을 대상으로 합니다. 매입 대상은 가구별 주거전용면적 85㎡ 이하인 다세대·아파트·연립주택·도시형생활주택·주거용 오피스텔 등입니다. 신청 접수 후 서류심사 및 매입심의 등을 거쳐 대상 주택을 선정합니다. 주택매입 과정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LH 재직 직원 및 가족의 주택은 매입하지 않고, 퇴직일로부터 5년이 지나지 않은 퇴직 직원 및 가족의 주택도 매입을 제한한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LH는 민간사업자의 매입약정 참여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인센티브도 마련했습니다. 금융권을 통해 매입약정 맞춤형 보증·대출상품을 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매입약정 실적을 보유한 민간 사업자는 LH가 추첨으로 공급하는 공공택지에 우선순위를 부여받을 기회도 줬습니다. 매입약정을 체결한 민간사업자에게 토지를 매도하는 경우에는 양도소득세를 감면받을 수 있습니다.
LH는 지난 2일 올해 분양·임대주택 7만4000가구에 대한 입주자를 모집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중 분양주택은 6353가구를 공급하고, 임대주택은 6만7000가구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임대주택 중 매입임대는 2만6000가구이고 전세임대는 3만가구입니다. 이들 임대주택은 무주택 서민의 주거 안정을 위해 주변 임대료 대비 30~80% 저렴하게 공급하는 게 특징입니다.
매입임대주택(2만6000가구)의 경우 올해는 쪽방 고시원 지하층 등 비정상 거처 거주자 대상 물량을 작년 7000가구에서 올해 1만가구로 확대합니다. 전세임대 3만가구도 준공이 임박한 미분양 아파트를 대상으로 선별해도 좋다는 게 업계의 주장입니다.
지난해 이후 전국 미분양 주택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7만5000여가구로 집계됐지만, 상반기 중 10만가구를 넘을 가능성도 적지 않습니다. 업계에서는 LH의 매입임대 정책을 활용해 준공을 앞둔 아파트 단지 위주로 매입에 나서는 게 미분양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주택 면적은 전용 59㎡ 이하로 하고 할인된 가격에 매입하면 임대주택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미매각?미분양 위험을 해소하고, LH에서 지급하는 약정금으로 자금조달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당초 취지도 살릴 수 있습니다.
업계에서는 정부의 미분양 아파트 고가 매입 논란과 관련된 '엄포'로 LH가 매입 임대 사업에 적극 나서길 꺼릴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서울의 미분양 아파트 매입 사건 이후 LH가 지나치게 위축돼 있다"며 "지방의 미분양 물량이 크게 늘고 있어 선제적으로 매입임대 정책을 활용하면 건설사 공사비 부담도 경감할 수 있고 매입임대 물량도 확보할 수 있어 일석이조 효과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진수 기자 true@hankyung.com